무대를 꽉 채운 커다란 회색빛 화면 벤치에 두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남자의 뒷모습인 것 같습니다. 객석에서 흐느껴 울기도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면서 거의 세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정주의 시 ‘황혼길’이, 허형만의 시 ‘얘야, 문 열어라’가 장사익의 혼을 실어 가슴 깊숙이 전해옵니다.

산 설고
물 설고
낯도 선 땅에
아버지 모셔드리고
떠나온 날 밤
얘야, 문 열어라!
잠결에 후다닥, 뛰쳐나가
잠긴 문 열어 제치니,
찬바람 온몸을 때려
뜬눈으로 날을 샌 후
얘야, 문 열어라!
아버지 목소리 들릴 때마다,
세상을 향한 눈의 문을 열게 되었고
아버지 목소리 들릴 때마다,
세상을 향한 눈의 문을 열게 되었고



몇년 전, 조그만 홀에서 반주도 없고 마이크도 없이 절규하는 장사익의 목소리에 목놓아 울었습니다. 차가운 땅 속에 혼자 있기 싫다고 외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오래 전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꿈속에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달려갈 수도 없고, 국제전화 요금과 생활비를 비교해보면서 전화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습니다. 그때는 멀리있기에 조금 참아야한다는 정도의 그리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진한 그리움도 있습니다.



같은 단어를 듣더라도 사람마다 머릿속에 그리는 이미지는 모두 다릅니다. 많은 분들이 ‘여자, 엄마, 어머니’라는 단어를 들으면 예쁜, 웃는, 안아주려는 앞모습을 떠올리고, ‘남자, 아빠, 아버지’라는 단어에서는 처진 어깨, 주름진 바지의 뒷모습을 떠올립니다. 넥타이를 맨 모습도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라기보다 누군가에게 보여 줘야 하고, 그것이 먹고 사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초등학교 어린이가 가족 그림을 그리는데 아버지를 도화지 뒷장에 그렸습니다. 항상 한밤중에 들어왔다 새벽에 나가는 아버지를 보지 못했기에 우리 가족인지 아닌지 몰라서 그렇게 그렸다고 합니다. 또 우리 땅이기는 하지만 약간 떨어져 있는 독도에 아버지를 비교하기도 합니다.


아버지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라는 이름 때문에 그 꿈을 가슴 속 깊이 숨겨두고 술 한잔 기울이며 스스로를 달랩니다. 자식이 잘되길 바라고, 그 자식은 꼭 꿈을 이루기 바라며 ‘기러기 아빠’라는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혼자 힘들지만 ‘기러기 아빠’보다는 ‘펭귄 아빠’, ‘독수리 아빠’가 되고 싶어 처진 어깨를 추스려 올리며 오늘도 아버지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입니다. 체육대회가 열리고 각 반 대항 피구시합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했지만 준우승을 하고 집에 돌아와 억울함을 아버지께 호소했더니 빙그레 웃으시며 2등하는 사람이 있어야 1등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서울로 시집 온 딸을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네 시간 내내 기차 안에서 우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배 위에 올려 잠 재우고, 손잡고 다니고, 솜사탕 먹으며 행복해 했던 예쁜 딸을 차마 두고 떠날 수 없으셨나 봅니다. 안구를 기증하셔서 지금도 두 사람의 눈을 통해 세상 어느 곳에서인가 딸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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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뒷모습이 기억 속에 오래 남는 남자, 아버지!!!


당신이 그립습니다.

토포하우스 대표 오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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