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L";$title="[권대우의 경제레터] 유쾌한 점심";$txt="";$size="250,129,0";$no="2009090909561598018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 회장] 마쓰시다 고노쓰케와 혼다 소이치로. 이 두 기업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경영의 神 하면 떠올릴 정도로 그들은 세계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인으로서 이들처럼 신화적인 존재가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어렵습니다. 그들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기업을 일궜습니다. 그러나 지구촌 어디를 가나 그들의 흔적이 배어 있지 않은 곳이 거의 없습니다. 일본을 넘어,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기업으로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어릴 때나 젊은 시절 꿈과 희망을 가집니다. 처음부터 꿈과 희망이 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뜻을 세운 사람과 꿈은 가졌지만 포기하고, 좌절한 사람의 DNA는 어떻게 다를까요?
그 답을 마쓰시다 고노쓰케와 혼다 소이치로에게서 찾아봤습니다. 마쓰시다 고노쓰케. 그는 파나소닉의 창업자입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기업군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은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11살에 구멍가게 점원으로 취업해야 생계유지가 가능할 만큼 돈이 없는 집안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현상이겠지요. 초등학교를 중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몸까지 허약해 늘 병을 달고 살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기자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성공한 비결이 무엇이냐는 물음이었습니다.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던 것, 허약했던 체질, 돈이 없어 배움의 길에 나서지 못했던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가난했기 때문에 구두닦이와 신문팔이 같은 일을 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경험을 쌓았고,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 몸이 약해서 하루 종일 일에 전념할 수 없었기에 능력 있는 사람을 발굴하여 그들에게 권한을 이양해줌으로써 더 큰 조직을 만들 수 있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우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평소 자신의 생각을 현실로 옮기는 DNA도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그가 교수들과 자신이 뭐가 다른지를 말한 대목이 있습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교수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지만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교수들의 강의를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나보다 교수들이 훨씬 많이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교수들은 나보다 부자가 되지 못했을까?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교수들은 100%를 알지만 하나도 실천하지 않는데 비해 나는 그 10분의 1에 불과한 지식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모두 실천했다.”
그렇습니다. 그는 80%의 지식보다 20%의 실천력을 중시했습니다. 머릿속에 태산을 움직이는 지식이 있더라도 이를 실천에 옮기지 못하면 그게 모두 무용지물(無用之物)이란 얘기지요.
혼다 소이치로는 혼다자동차의 창업자입니다. 그는 “꿈을 가질 것, 끊임없이 도전할 것, 어떤 일이 있어도 그 꿈을 단념하지 말라”는 말을 즐겨 썼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한 힘든 상황이 길을 막아서는 일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시련에 부딪혀도 장애물 넘기 경주를 떠올렸습니다. 장애물 넘기 경주에서 장애물을 만난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던 작은 모터 한 대를 떠올리고 구식 잔디 깎는 기계에 쓰이던 모터를 자전거에 연결해 볼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세계 최초의 오토바이가 탄생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에게는 별난 습관이 있었습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잠자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그 순간 만큼은 오로지 연구에만 열중했다고 합니다.
3일 밤낮을 먹고 자는 것을 잊어버린 채 연구에만 몰두할 때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포기를 모르는 인내심과 집념, 한 가지에 파고드는 뚝심과 열정이 그를 세계적인 기업가가 되는 바탕이 됐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업이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그가 한 역할과 발상의 전환입니다. 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자신은 기술개발에만 열중하고 생산과 판매, 선전 등은 전문가에게 과감히 맡겼습니다. ‘경영학 산책’(사카구치 다이와 지음, 김하경 옮김)에는 혼다가 세계적인 기업이 된 이면에 선택과 집중에 대한 그의 지혜가 디딤돌이 됐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토바이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을 때 일본에는 이미 수많은 오토바이 공장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혼다의 기술력에 버금가는 곳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경쟁에서 승리한 곳은 혼다뿐입니다.
혼다가 다른 공장들과 싸워 운명을 가른 에너지는 어디서 나왔을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혼다 소이치로에게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전문가지만 다른 부문에서는 비전문가다.”
이런 생각에서 그는 원 맨 경영체제에서 흔히 나타나는 폐해에 빠져 자멸하지 않고 오히려 회사를 더 크게 성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을 기술자로 살아온 인물입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무엇보다 사랑했고 기술개발에 모든 열정을 불태운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는 2차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년에 혼다기연공업의 전신인 혼다기술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그러나 경영은 후지사의 다케오에게 맡겼습니다. 그는 혼다 소이치로의 꿈을 실현시켜준 경영전문가로서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생산, 판매, 선전 등 일체의 업무를 챙겨 혼다의 역량을 키웠던 것입니다.
“나는 로빈슨 크루소의 고도에 흘러가더라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꽃씨가 기왓장에 뿌려지더라도 싹을 내게 하고 꽃을 피우게 할 자신이 있다.”
좌절하지 않은 정신력과 도전정신을 엿볼 수 있는 그의 말입니다.
기업들의 신입사원 채용열기가 막바지에 이른 것 같습니다. 좁은 취업문 탓에 예비졸업생들과 아직까지 직장을 잡지 못한 취업 대기생들의 가슴은 지금 숯덩이가 돼 있습니다. 마쓰시다 고노쓰케와 혼다 소이치로에게서 인생의 해답을 찾는 11월의 마지막 날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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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 회장 presid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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