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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미래를 위한 선물, 고등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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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완 고등과학원(KIAS) 부원장 기고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아인슈타인은 1955년 죽을 때까지 프린스턴의 고등연구소(IAS)에서 연구를 계속했다. 이론연구와 지적탐구를 위해 독지가의 기부금으로 세워진 고등연구소는 프린스턴 대학교와는 아무 연관이 없는 별개의 연구기관이다. 미국이 경제대공황을 겪고 있던 1930년에 세워진 고등연구소는 아인슈타인 외에도 폰노이만, 괴델, 오펜하이머 같은 쟁쟁한 수학ㆍ과학자들이 머물렀으며, 자유로운 연구환경 아래 노벨상 21개, 필즈메달 34개를 수상한 수많은 천재학자와 학계 리더들을 키워냈다.

지금도 고등연구소는 30명 내외의 교수들을 중심으로 다수의 박사급 연구원들과 연중 끊어지지 않는 방문학자들이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순수 기초과학의 도약을 위해 1996년 고등과학원(KIAS)을 출범시켰다. 미국이 대공황을 겪으면서 고등연구소를 세운 것처럼, 우리나라의 고등과학원도 외환위기 속에서 시작했다. 현재 20여명의 교수진을 중심으로 70여명의 박사후연구원들과 국내외 방문연구진들이 순수이론과 기초과학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고등과학원은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거대ㆍ실험 연구가 아닌 이론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기때문에 작은 예산으로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성과를 내놓고 있다. 이같은 성과는 뛰어난 국내외 학자들이 외국 대신 고등과학원을 선택하게 했다. 외국 학자를 초빙하거나 외국 연구소를 유치하려면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고등과학원은 성공적인 연구기관의 모델인 셈이다.

고등과학원의 성장 원인은 카이스트가 설립의 모태이면서도 철저한 독립운영을 보장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연구소들이 어려운 경영상황을 만나면 당장 돈이 안 되는 연구분야를 희생시켜 온 것과 달리, 고등과학원은 기초과학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다. 지난 6월 수학자로서는 최초로 호암상을 수상한 황준묵 교수는 "고등과학원의 자유롭고 몰두할 수 있는 분위기 덕에 연구가 가능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재 고등과학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연구는 영영 경제적 효용이라고는 전혀 없을지도 모르는 그런 연구들이다. 이른바 초목적적 연구라 할 만하다. 되돌아보면 이런 초목적적 연구가 인류 역사를 한 차원 높은 곳으로 이끈 경우가 많았다. 1900년 플랑크가 시작한 양자물리학이 반도체와 레이저의 기초가 될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200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핸슈 교수는 노벨상수상 기념강연에서 재미있는 그림을 하나 보여주었다. 울타리 밖의 모이를 쪼려고 하지만 목이 울타리에 끼여 있는 어미 닭 위에는 '목적지향적 연구'라고 씌어 있고, 자유롭게 거닐다 울타리의 빈틈을 비집고 나온 병아리 앞에는 모이가 흩어져 있다. 그 아래 '호기심으로 하는 연구'라고 씌어 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는 다양한 규모, 다양한 방식, 다양한 목적의 연구가 필요하고, 고등과학원의 연구도 그런 다양성 속의 하나다. 마치 대기업이 할 사업이 있고, 벤처기업이 할 사업이 따로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카이스트는 수많은 공학도ㆍ과학도와 벤처기업들을 키워냄으로써 우리나라 산업경제 발전의 일등 공신이 됐다. 이제는 카이스트가,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순수이론 기초과학에 몰두할 수 있는 고등과학원을 키워냄으로써 우리나라 순수이론 기초과학 발전에도 일등공신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재완 고등과학원 부원장 jaewan@kia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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