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프랑스)=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김혜자는 나문희, 김해숙과 함께 '한국의 엄마'로 꼽히는 대표적인 배우다. 올해는 세 '엄마' 중 두 명이 연이어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인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에 출연한 김해숙과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 출연한 김혜자가 하루 차이로 칸 뤼미에르대극장의 빨간 주단 위에서 한국 중견배우의 힘을 과시했다.

칸에서 '마더'가 처음 공개된 바로 다음날인 17일 오후 5시께 김혜자는 눈꽃처럼 하얀 모습으로 국내 취재진을 맞이했다. 영화 속 '극한의 엄마'는 온데간데 없었다. 소감도 무척 담담했다.

"솔직히 얘기하면 레드카펫은 제게 별 큰 의미가 없어요. 서울에서도 상 탈 때 레드카펫이 있잖아요. 그때마다 무안해서 뒷문으로 들어갔어요. 외국관객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들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떨리긴 했지만 다른 이유로 떨리진 않았어요. 실수하지 말고 잘 올라가야지 하는 것만 있었죠."

김혜자는 서울에서 '마더' 기술시사도 겁이 나서 못 봤다고 말했다. "불 켜졌을 때 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게 두려웠다"는 게 이유다. 칸에서의 상영은 오히려 그를 편하게 했다.

"칸에서는 예의상 박수를 다 친다고는 하지만 '마더' 상영이 끝나고 박수가 끊이지 않고 이어져서 약간 다른 반응이라는 것을 감지했어요. 어제는 정말 큰일 치른 것 같아요."

'마더'는 살인자로 몰려 구속된 아들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쓰는 엄마의 사투를 그린 작품. 김혜자는 영화 도입부부터 불안한 눈빛으로 아들을 지키려 애쓰는 엄마의 광기와 집착을 완벽히 소화해 칸 관객들의 극찬을 받았다.

"저는 엄마의 본질은 똑같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처한 상황이 그렇게 행동하게끔 만들었기 때문에 영화 속 엄마의 모습이 나온 거죠. 내게 함께 일하자고 말한 봉준호 감독에게 가장 감사해요."

김혜자가 1999년 영화 '마요네즈' 이후 10년간 영화에 출연하지 않은 이유는 의미 없는 반복이 싫어서였다. 그간 들어왔던 시나리오의 캐릭터들이 TV에서 이미 연기했던 것을 답습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건 나도 지루하고 내가 관객이라도 보러 가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마더'가 김혜자를 끌어당겼던 건 우선 엄마에게 특이한 일들이 벌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에서였고 둘째로는 우연히 TV에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본 뒤 '우리나라에도 저런 영화가 있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좋았기 때문이었다.



'마더'는 봉준호 감독이 '괴물' 전에 배우 김혜자를 모티브로 구상했던 작품이다. 봉 감독은 김혜자에게 준비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했고 김혜자는 "나를 두고 구상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괜히 내게 했던 말들 때문에 부담을 갖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봉 감독은 김혜자가 '마더'를 잊을 만할 때마다 연락해서 출연을 부탁했고 결국 영화는 완성돼 칸에 도착했다.

김혜자는 "한 작품에 출연하고 나면 늘 1년은 연기와 관계 없는 일을 하며 쉬지만 이번만은 달랐다"고 말했다.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종영 후 곧바로 '마더' 촬영에 들어간 것이다.

꼼꼼하고 세밀한 연출로 유명한 봉준호 감독과 '연기의 신' 김혜자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 화제가 됐다. 최고의 경지에 오른 두 사람 사이에 충돌은 없었는지 물었다.

"서른 번 넘게 찍은 적도 있어요. 내가 아닌 것 같아서 다시 찍자도 한 적도 많았죠. '웬만하면 그냥 해도 될 텐데 왜 저래?' 하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말하자면 봉 감독은 타성에 젖어있는 연기를 깨부순 사람이라 할 수 있어요.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세포, 죽어 있던 세포를 깨워준 사람인 거죠. 나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놓고 조종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요."

김혜자는 '마더'를 가리켜 "잊지 못할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까"라는 단서를 붙였다. 김혜자는 '마더'를 '행복한 순간'으로 수식했다. "봉준호 감독처럼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이 몇년 전부터 저를 갖고 그런 기획을 해서 제게 행복한 순간을 갖게 해준 모든 분들과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말이 100% 진심으로 들렸다.



고경석 기자 ka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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