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레터맨은 기상캐스터, 미키 루크는 프로 권투선수 출신
$pos="C";$title="";$txt="복서 출신으로 1980년대 영화계 스타가 된 미키 루크는 오랜 공백 기간 끝에 영화 '레슬러'로 스크린에 복귀했다(사진=블룸버그뉴스).";$size="358,480,0";$no="2009033109102811745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는 "미국인들 삶에 제2막은 없다"고 쓴 바 있다. 하지만 그가 잘못 생각한 듯하다. 인생의 제2막은 불가능한 게 아니다. 미국의 내로라하는 유명인사들 가운데 몇몇은 인생 제2막에서 오늘날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미국에서 발간되는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 온라인판은 인생 제2막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로 영화배우 해리슨 포드를 꼽은 바 있다. 그는 15년 동안 목수로 일하다 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 제작자 조지 루카스의 눈에 띄어 영화계로 입문하게 됐다.
◆해리슨 포드=목수에서 배우로. 포드는 15년 동안 목수로 일하며 아티스트 세르지오 멘데스에게 사운드 스튜디오를 지어주고 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 제작자 조지 루카스에게 가구를 만들어줬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일이지만 루카스는 포드에게 영화 '청춘낙서'(American Graffiti)에 단역으로 출연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이후 루카스가 유명해져 더 큰 사무실이 필요하게 되자 포드에게 일을 맡겼다.
그러던 중 어느날 루카스는 '스타워스' 출연진 가운데 아직 확정되지 않은 배역의 대사를 포드에게 대신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대사를 들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 의해 포드는 주연으로 발탁됐다. 이렇게 해서 포드의 인생 제2막은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것이다.
◆데이비드 레터맨=기상캐스터에서 코미디언으로. 레터맨은 지역 방송국에서 기상캐스터로 출발했다. 하지만 일기예보보다 익살로 더 유명했다. 방송 중 존재하지 않는 도시의 기온을 예보하고 단순한 폭풍인데도 허리케인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28세의 레터맨은 코미디 작가를 꿈꾸며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했다. 그러나 코미디 대본을 쓴 게 아니라 각종 쇼에 게스트로 출연하게 됐다. 1977년 레터맨은 쇼 하나를 기획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하지만 레터맨의 번득이는 유머감각은 '토크쇼의 제왕' 자니 카슨을 사로잡았다. 카슨은 자신이 진행하는 '투나잇 쇼'에 레터맨을 게스트로 앉혔다. 이윽고 1986년 레터맨은 자신의 쇼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마사 스튜어트=주식중개인에서 미디어업체 마사 스튜어트 리빙 옴니미디어 회장으로. 시장이 폭락한 1973년 전만 해도 스튜어트는 월스트리트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일했다.
이후 32세의 스튜어트는 월스트리트에서 벗어나 코네티컷주 웨스트포트에 있는 낡은 농장을 개조해 이사했다. 이것이 주택 리모델링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다.
1977년 스튜어트는 마사 스튜어트라는 이름의 기업을 출범시켰다. 이것이 마사 스튜어트 리빙 옴니 미디어의 모태가 됐다.
◆아널드 슈워제너거=보디빌더에서 영화배우로 그리고 주지사로. 슈워제네거는 두 차례 변신했다. 영화배우와 주지사로 탈바꿈하기 전 그의 직업은 보디빌더였다.
그는 배우로 전업하자마자 에이전트들로부터 "근육질 몸이 무시무시한데다 억양은 우스꽝스럽고 이름이 너무 길어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정계에서 제3의 삶을 시작한 슈워제네거가 성공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200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소환선거에서 승리하고 2008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미키 루크=복서에서 배우로 다시 복서로 다시 배우로. 루크가 출연한 영화 '레슬러'는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됐지만 상은 받지 못했다. 어린 시절 루크는 무하마드 알리가 다닌 권투장에서 권투를 배웠다.
루크는 17세에 세계 미들급 챔피언 루이스 로드리게스와 경기를 벌인 바 있다. 뇌진탕으로 링에서 내려와야 했던 1971년까지 그는 20차례 경기 중 17차례 KO승을 거뒀다. 이후 루크는 뉴욕으로 건너가 연기학원에 등록한 지 얼마 안 돼 스타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5년 동안 스크린 밖에서 무절제한 생활로 자신의 말마따나 "삶을 망치고 말았다."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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