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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시각] 힘겨운 구조조정의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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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이 힘겹다. 세상이 구조조정 한다고 난리다. 이런 판국에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구조조정을 해야할지 막막하다. 손댈 곳들이 너무 많다. 일단 아내에게 비용을 줄여볼 곳을 찾아보라고 이른다.
 
둘러보면 줄여야할 것들이 끝이 없다.냉장고를 열면 오랫동안 먹지 않고 얼려둔 생선이며 묵은 장아찌가 그대로다.
 
옷장에도 십수년전 결혼식날 입었던 양복이 언제 다시 입어봤는지 기억에 없을 정도로 빛 바랜 채 걸려 있다.네 식구가 사는 집도 스무평 이상을 사용하지 않는다. 주방과 침실 세개면 충분할 듯 하다. 불필요한 공간이 많다.
 
의식주 등 기본생활이 다 거품이다.
 
거품속에 산다는 것의 증거들이 도처에 깔려 있기는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다. 사람 관계도 그렇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적당한 입지를 갖추기 위해 불필요하게 맺었던 많은 관계. 실질적이지 못한 만남들이 수도 없다. 핸드폰속에는 일년동안 전화 한번 걸지 않은 이름들이 넘친다.이들을 챙기고, 관여하느라 보낸 시간도 거품이다.
 
그런데도 더 큰 집을 가지려고 발버둥 치고, 이웃이 좋은 차라도 사면 갖지 못해 안달했으니...내가 거품 속에 살았고, 또 세상을 거품으로 흥청이도록 만들었으니...불황이 어찌 안 오랴...거품을 위해 빚을 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손 내밀면서도 나는 줄여야겠다는 생각보다 확장하느라 혈안였다.
 
지금 거품으로 채워진 내 경제학에 강력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어디서 어떻게 줄여 나가나"하는 생각이 괴롭다. 줄여본 적이 없으므로 줄이기가 두렵다.
 
이런 때 아버지가 생각난다.어릴 적 몽당연필마저 볼펜 대롱에 꽂아 쓰도록 하고, 공책도 빈 틈이 없이 채워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용돈을 주던 아버지.
 
아버지는 항상 말씀 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게 남의 빚 얻어 쓰는거다. 누구한테 손 내밀 생각은 죽어도 하지 마라"
 
또 당신이 실의에 찬 내게 말하는 듯하다.
 
"힘들고 괴롭다고 ? 지금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인데..."
 
그렇게 불호령을 칠 것 같다. 아마도 당신이 살아갈 날에 대한 걱정에서가 아니라 다 큰 자식 세상살이 고달프다고 낙심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으리라.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기업의 오너들도 마찬가지일거다. 십년전 인력감축을 단행한 적이 있는 K건설의 D사장과의 만남은 유별나다.
 
D사장은 회사가 위기에 처하자 주변사람들이 직원들을 모두 믿지마라는 충고를 가장 많이 들었다. 그런데 며칠 후 임직원들이 돈을 모아 가져왔다. "사장님 힘내시고 반드시 회사를 다시 일으키자"고. D사장은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떠나는 직원들에게 "회사가 회생하면 단 한사람도 빼지 않고 불러주마. 그 때 돌아와 함께 일하자"고 약속했다.
 
나는 몇년 후 D 사장이 약속을 지키고 있는지 다시 찾아봤다. 구조조정 당시 퇴직했던 직원 100여명 중 90여명이 돌아와 있었다. 그는 그동안 술과 담배, 운동도 끊고 주말이면 등산을 하면서 위기를 이겼다.
 
"새로 자리를 잡아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을 빼고는 옛식구들을 다 불렀다. 못 오는 사람들은 직접 만나서 이유를 다 들었다. 난 약속을 지켰고 다들 납득한다.그것으로 내 할일을 마친 것 같다"
 
지금같은 시절 아버지 같은, D사장같은 어른들이 많아서 어리석은 우리들을 따끔하게 질책하고, 용기를 주고, 거품없이 살도록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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