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를 추모하는 행렬은 계속되고 있다. 요즘도 그가 안장되어 있는 용인 천주교 성직자 묘역에는 추모객이 줄을 잇고 있다. 선종 후 첫 휴일인 지난 일요일 명동성당 추모미사에 3000여명이 참석하는 등 전국의 성당에 줄잡아 1만 여명에 가까운 신도와 추모객이 모였다니 실로 그가 남기고간 울림은 웅대하다.
김 추기경의 선종이 왜 이다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걸까, 그는 우리시대의 어른이요 상징이었다. 그는 어려운 시대의 버팀목으로 양심을 지켰고,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사랑을 실천하며 국민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다.
한국 현대사의 고비마다 민주화와 인권의 횃불을 들어 불의한 무리들에 맞서면서도 시대정신을 굳건히 지켰다. 그는 또 평생을 가난한 사람, 버림받은 사람, 힘없는 사람의 곁에서 그들의 상처를 보듬고 어루만지며 신부 서품을 받으면서 가슴깊이 새겼던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사목 표어를 몸소 실천했다.
김 추기경의 삶은 우리에겐 역사였다. 1971년 당시 집권세력이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영구집권의 길을 획책하자 TV로 생중계된 성탄 자정미사에서 독재와 공포정치를 규탄하는 등 소신 있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80년 광주민주화항쟁 때는 릲물리적 힘만으로 유지되는 침묵과 죽음의 질서를 바탕으로 해서는 폭력의 악순환이 거듭될 뿐릳이라며 계엄령 해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또 87년 박종철군 사건이 터지자 "이 정권의 뿌리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게 있습니까. 총칼의 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일갈했고 6월항쟁 때는 명동성당에 진입한 시위대를 강제 연행하려 하자 "경찰이 들어오면 나를 쓰러뜨려야 신부님과 수녀님을 볼 수 있고 또 이들을 쓰러뜨려야 학생들을 보게 될 것"이라며 명동성당과 시위대를 지켜냈다. 그는 암울했던 시기 민주화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우리는 큰 어른을 보내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김 추기경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그의 영정이 모셔있던 전국의 성당에 100여만 명이 문상하며 그를 배웅했다.
시신이 안치된 명동성당엔 30초에도 못 미치는 짧은 만남을 위해 3~4시간을 추위 속에서 기다리는 불편도 마다하지 않았다. 조문행렬에는 나이든 분도, 젊은 친구도. 아이를 데리고 온 주부도, 몸이 불편한 분도, 높은 분도, 유명한 분도 모두 함께 하고 있었다.
그들에겐 이미 남녀도 노소도 신분도 이념도 없고 어른에 대한 존경과 예의만이 있었다. 그 순간은 모두가 한 마음이었다. 사사건건 대립하고 갈라지는 작금의 현실에서도 동기가 부여되면 한 마음이 될 수 있다는 우리 국민의 진면목을 보여 준 것이다. 그가 떠난 커다란 구멍을 하나됨으로 메우라는, 통합과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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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추기경은 또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를 던지고 떠났다. 그는 "세상에서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요"란 말을 남기고 평소 세상을 살피던 두 눈을 주고 떠났다. 이는 김 추기경이 우리에게 남긴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은 그가 평생을 실천해온 고귀한 정신이기에 더욱 값지다. 자신을 낮추고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며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그는 노환으로 고통 받는 마지막 순간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누구나 걱정하는 경제위기보다 더한 혼돈의 위기에 처해있다. 국민은 지쳐있고 생활은 갈수록 피폐해가고 있다. 더구나 위기의 끝이 어디인지를 알지 못하고 불확실성의 내일을 맞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국회도 그 어느 누구 하나 국민들에게 안정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울림이 더욱 그리워지는 이유다. 그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통합과 소통, 사랑의 가르침은 우리를 계속 질타할 것이다. 그는 우리 국민이 평안하게 지내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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