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돈으로 환산되는 현대사회의 관계
'돈과 이웃'이라는 화두 아래
전세사기·코로나19·창업 등
한국인의 절실한 문제 다룬 소설
눈을 질끈 감았다. 소설 밖에서 주인공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소설 속 주인공이 내가 숨겨두었던 내면을 들춰냈다. 발가벗겨진 듯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모임에서 친구가 입고 온 명품 옷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면서도, 속으로는 내 옷차림을 위아래로 훑어보게 될 때가 있다. 처음 만난 타인의 외모만으로 은근히 '견적'을 매기면서도, 겉으로는 순진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소설 '안녕이라 그랬어'는 돈과 계급, 계층을 나누어왔던 우리의 속마음을 부지불식간에 드러낸다.
이 작품은 한국 사회의 변화와 작가 개인의 변화를 함께 담아낸 단편집이다. '돈과 이웃'이라는 화두 아래 부동산, 전세 사기, 코로나19, 창업 등 한국인의 절실한 삶의 문제를 다룬다. 우리의 일상과 지나치게 맞닿아 있어, 마치 사회학자의 르포를 읽는 듯한 인상을 준다. 각자가 체감하는 경제적 지표에 따라 형성된 계급의식은 때로 자괴감을, 때로는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은 '공간'이다. "많은 희곡 속 사건은 '초대'와 '방문', '침입'과 '도주'로 시작됐다"는 문장처럼, 인물들은 누군가의 공간을 방문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독자 역시 그들을 따라 낯선 공간으로 초대된다.
첫 단편 '홈파티'는 주인공이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그려온 '사회적 주류' 오 대표의 집에 초대되면서 막을 연다.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가구와 인테리어가 만들어내는 '서사적 윤기'를 본능적으로 감지하게 된다. 초대된 이들은 서로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지만, 계급의 공기는 느슨한 듯하면서도 촘촘히 그들 사이를 감싼다.
이 소설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대화의 이면을 끊임없이 의식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알면서도 모른 척해왔던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게 되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순간을 경험한다. 이는 두 번째 이야기 '숲속 작은 집'에서도 이어진다. 서로 다른 배경에서 자란 부부가 각기 다른 경제적·인권적 감수성을 드러내며 균열을 맞는다.
두 사람은 한 달간 해외여행을 떠나며 또 다른 질문과 마주한다. 숙소 관리인을 '메이드'라고 부를 때 느껴지는 미묘한 불편함, '노동력이 싸다'는 경제적 조건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위치의 차이. 팁을 얼마나 줄 것인가, 그녀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같은 사소해 보이는 문제는 결국 자신이 살아온 삶의 태도를 시험하는 거대한 질문으로 번진다.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나라로 여행을 떠났을 때의 기억도 떠오른다. 피로를 풀기 위해 들렀던 마사지숍에서, 이제 막 열여덟이 되었다는 직원이 채 여물지 않은 손으로 발을 주무르던 순간. 소설의 표현처럼 "이국에서 마주한 노골적인 계급 차에 쩔쩔"매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소설은 묻는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돈으로 환산되는 숫자들이 관계를 대신해가는 현실 속에서, 이 질문은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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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 그랬어|김애란 지음|문학동네|320쪽|1만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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