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보조금 '예금토큰'으로 지급… 정부, 세계 최초 디지털 집행 실험 (종합)
전기차 충전사업에 시범 적용
업무추진비 등에도 예금토큰 적용 검토
부정수급 차단·정산 단축 기대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확대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6.03.19 윤동주 기자
정부가 국고보조금 집행에 블록체인 기반 '예금토큰'을 도입하는 세계 최초 실험에 나선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사업을 시작으로 디지털화폐를 활용한 재정 집행을 본격 추진하면서 보조금 지급·정산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재정 디지털 전환'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19일 정부에 따르면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오는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디지털화폐를 활용한 국고금 집행 시범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번 사업은 기관용 디지털화폐(CBDC)와 예금토큰을 활용해 국고보조금 지급 및 정산 방식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에는 국고통합계좌에서 각 부처 계좌로 현금이 이동한 뒤 보조사업자에게 지급되는 방식이었지만, 앞으로는 현금 대신 프로그램화된 디지털 토큰이 직접 지급되는 방식으로 바뀐다.
디지털화폐는 중앙은행이 블록체인 기반으로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법정화폐이며, 예금토큰은 은행 예금을 기반으로 발행되는 디지털 지급수단이다. 한국은행이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실거래 테스트를 진행한 바는 있지만, 국가 재정사업에 적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범사업은 기후부의 '전기차 충전시설 구축 사업' 가운데 중속 충전시설(최대출력 30~50㎾·총 300억원 규모)을 대상으로 추진된다. 보조사업자인 한국환경공단이 오는 5월 사업자를 공모하고 6월부터 선정 절차를 거쳐 보조금을 예금토큰 형태로 지급하게 된다.
재경부 관계자는 "올해 예산을 대상으로 재정자금 집행에 디지털화폐를 적용하는 첫 사례"라며 "오는 5월부터 실제 집행에 들어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예금토큰 활용에서 핵심은 '조건부 사용'이다. 토큰에 스마트계약(스마트컨트랙트)을 적용해 사용처와 시간 등을 사전에 제한할 수 있어 보조금의 목적 외 사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기차 충전기 보조금은 충전기 판매·설치와 관련된 특정 업체나 한국전력 납부 등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설정할 수 있다.
이는 기존처럼 사후 감사로 부정 사용을 적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애초에 잘못된 사용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 관계자는 "현금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화된 토큰이 이동하는 개념"이라며 "재정 집행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예금토큰은 기존 결제 방식 자체도 바꿀 가능성이 있다. 실물카드 없이 스마트폰 기반 전자지갑을 통해 결제하는 방식으로, 이용자는 자신이 거래하는 은행의 예금토큰을 전자지갑에 담아 사용할 수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신용카드가 아니라 사실상 체크카드처럼 바로 결제되는 방식"이라며 "가맹점 입장에서는 카드 수수료가 사라지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NFC 방식뿐 아니라 QR코드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결제가 가능하도록 설계해 대부분의 가맹점에서 사용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시범사업이 전기차 충전 인프라로 선정된 배경에는 '사용처 제한이 명확하다'는 점이 작용했다. 충전기 보조금은 충전기 판매·설치와 한전 납부 등 제한된 용도로만 사용되기 때문에 조건부 토큰 적용 효과를 검증하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이다. 이 관계자는 "부처와 협의를 거쳐 시범사업을 선정한 것"이라며 "충전기 설치 사업은 사용처가 제한적이어서 예금토큰 적용 효과를 검증하기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기차 충전기 보조사업은 과거 일부 부정수급 사례가 지적된 바 있다. 2025년 국무조정실 점검에서도 일부 문제 사례가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금토큰이 도입되면 이러한 부정수급 가능성도 구조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보조금이 현금이 아닌 조건부 토큰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등 제3자가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가맹점 측의 이용 방식도 별도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전자지갑 의무화' 우려에 대해 정부는 기존 금융 인프라를 활용하는 형태로 확장할 계획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현재는 시범사업 단계로 업무추진비 등에 예금토큰을 적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향후 확대를 대비해 주요 시중은행이 참여하는 결제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며 "플랫폼이 갖춰지면 상점에서도 별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이후 추가 시범사업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업무추진비 등 관서운영비에도 예금토큰 적용을 검토 중이다. 사용 가능 업종과 시간대를 사전에 설정하면 심야 시간이나 부적절한 업종에서의 지출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재정 집행 단계에서의 흐름은 블록체인 기반으로 모두 기록된다. 다만 공무원이 업무추진비 등을 사용할 경우 어느 가게에서 얼마를 사용했는지까지 거래 기록이 남지만, 이후 민간 영역에서의 사용까지 추적하는 구조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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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번 시범사업을 계기로 디지털화폐 기반 재정 집행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2030년까지 전체 국고금 집행의 25%를 디지털화폐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다. 구 부총리는 "이번 협약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재정 집행 혁신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2030년까지 국고금 집행의 4분의 1을 디지털화폐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관련 사업을 적극 발굴·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세종=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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