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마 파시' 김신록 "경주마처럼 질주했던 삶…세상엔 걷는 방법도 있죠"
연극 '프리마 파시'는 형식과 주제 면에서 묵직하다. 공연 시간이 2시간으로 긴 편인데 배우 한 명이 전체 무대를 감당해야 하는 1인극이다. 주제는 더 묵직하다. 성폭력 사건에서 늘 승소하던 여변호사가 동료 변호사에게 성폭행을 당해 피해자로서 법정에 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연극은 법이 성폭행 피해자들을 제대로 돕는지, 자칫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변호사에서 피해자가 된 주인공 테사는 끝내 법정에서 눈물을 흘리며 성폭력 관련 법은 바뀌어야 한다고 호소한다,
배우 김신록은 "해내야 하는 몫이 무척 큰 작품"이라며 출연 여부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대사량도 많고 극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책임감을 가지고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있었다"고 했다. 다만 주제의 묵직함에 대해 "무겁다기보다는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발언을 어떠한 은유 없이 직설적으로 말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성폭행 사건 다룬 '2시간짜리' 1인극
테사의 첫 대사는 경주마다. 테사는 치열한 심리가 벌어지는 법정 상황을 설명하며 스스로를 경주마에 비유한다. 늘 1등으로 들어오는 경주마처럼 자신감에 차있고 스스로에 도취돼 있다. 증인을 갖고 놀며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끌어내고 결국 승리한다.
하지만 경주마는 통제받아 길들여지는 동물의 상징이기도 하다. 인간은 눈가리개로 경주마의 시야를 가린다. 시야가 넓은 말이 한 눈 팔지 않고 결승선만을 향해 질주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테사는 성폭행 피해자가 된 뒤 자신의 시야를 가렸던 눈가리개를 의식한다. 승리를 위해 이용했던 법이라는 도구가 정작 보호해야 할 피해자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김신록은 "승승장구하던 여자가 자신이 믿던 세계관이 산산조각 나는 경험을 하고, 기존 세계관의 방식으로 문제를 타개해 보려고 애쓰다 결국에는 자신이 믿던 세계관, 그 구조 속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세상 자체를 다르게 봐야 한다고 깨닫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김신록은 "배우로서는 2시간 안에 다른 두 개의 세계관을 넘나들어야 된다는 점이 매력적이면서도 가장 큰 숙제"라고 덧붙였다.
극은 중간휴식 없이 진행된다. 하지만 김신록은 배우 입장에서 2막으로 나뉜 듯한 연극이라고 설명했다. 성폭력을 당한 시점을 기준으로 변호사와 피해자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은유 없이 현실 말하는 작품"
김신록은 특히 성폭력 이후의 테사를 연기하는 대목에 대해 "관객에게 어떤 주제를 들려주기보다 (테사의 고통을) 어떻게 체험하고 공감하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고 했다. 그래서 김신록은 성폭력 이후의 연기는 몸으로 표현하는 부분에 훨씬 더 신경썼다고 했다.
"2막의 세계는 훨씬 감각적이고 몸적이다. 그리고 언어 너머의 세계인 것 같다. 언어, 이성, 논리, 법으로 건져 올릴 수 없는 세계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언어로 이야기해보려고 하지만 표현이 안 되는 세계, 이성으로 붙잡으려고 하는데 자꾸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리는 세계다. 그래서 2막에서는 언어에 담기지 않는 세계들이 좀 흘러넘쳐야 된다고 생각한다."
김신록은 1막의 테사가 혈통 좋은 경주마라면 2막의 테사는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망아지라고 했다.
"변호사라는 자신의 일이 경주가 아니라 다른 무엇이라고, 법이 게임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테사가 완전히 무너진 세계에서, 새롭게 다져진 땅 위에 첫 발을 내디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주가 아니라 걷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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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마 파시는 오는 11월2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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