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점검서 주택 13곳 중 11곳 ‘E등급’
대피 통보에도 “30년 터전 못 떠난다”
“공사 없었으면 균열도 없다”…원인규명 요구
북구 “안전 확보 최우선, 보상은 시가 주도”
광주시 보험·임시거처 대책에도 갈등
16일 광주 북구 중흥동의 한 골목. 담장이 갈라지고 벽체가 기운 집 앞에서 박모(68) 씨가 기자를 맞았다. 그는 1990년 집을 매입한 뒤, 1995년부터 지금까지 30년 넘게 살아왔다. 9살이던 아들은 이제 마흔을 코앞에 두고 있고, 종갓집으로서 명절이면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왔다.
이달 초, 박 씨의 집은 정밀안전점검에서 즉시 사용을 중단해야 하는 'E등급' 판정을 받았다. 광주시는 지난 1일 박 씨를 포함한 주민들에게 긴급대피를 통보했다. 그러나 박 씨는 집을 떠나지 않았다. "명절이 내일모렌데 모텔로 가라더군요. 종갓집인데 차례를 어디서 지냅니까. 아들 결혼도 이달 말입니다. 나 죽어도 내 집에서 죽을 겁니다."
추석을 앞두고 세 자녀가 모두 내려오는 집을 비운다는 건 쉽지 않았다. 30년 넘게 살며 집을 손보고, 대문 앞에서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명절마다 제사를 준비해온 터전이었다.
그가 휴대전화로 보여준 영상에는 공사 진동에 맞춰 부엌 벽이 요동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소리가 울리고, 벽이 흔들렸죠. 누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제야 금이 가고 집이 기울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박 씨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공사 관계자 2명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벽과 기둥에 부착된 장치를 차례로 살펴보며 집의 기울어짐을 확인했다. 취재진이 "매일 점검하러 오는 거냐"고 묻자, 두 사람은 "매일 확인한다"는 짧은 대답만 남기고 자리를 옮겼다.
집 안전 문제에 이어 보상 문제도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었다. 손해보험사가 산정한 피해액은 420만원. 박 씨는 이를 거절했다. "화장실만 고쳐도 100만원이 넘게 드는데, 돈은 필요 없다. 집을 원래대로만 해주면 됩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북구청 공무원은 "(주민들께) 대피를 권고해도 선뜻 움직이지 않는다. 보상과 대책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우리도 전화를 드리기가 죄송스러울 때가 많다"며 곤혹스러운 심정을 드러냈다.
또 다른 북구 관계자는 재난안전대책본부를 꾸린 배경과 갈등 지점을 짚었다. 그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시민들의 안전과 재산 피해가 우려돼 본부를 구성했고, 주민들께 대피명령을 내렸다"면서 "다만, 북구의 역할은 주민 안전을 위해 설득하고 이주를 돕는 데까지다. 보상과 조치는 시 차원에서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주민들 대부분은 지하철 공사가 주요 원인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광주시가 보상문제를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광주시는 지난 4월 담장 붕괴 사고 이후 주민 요청에 따라 지난 7~9월 정밀안전점검을 실시했다. 조사 대상 13곳 가운데 11곳은 E등급, 2곳은 D등급으로 판정됐다.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건물 노후, 지반침하, 균열 등이 복합적 원인으로 지적됐으며, 문 개폐 불량과 건물 경사 등 구조 이상도 확인됐다.
전날 설명회에 참석한 또 다른 주민은 "공사가 없었다면 이런 균열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인도와 골목 바닥까지 갈라졌는데, 어떻게 노후화 탓으로 돌리는가. 벌써 3년째 이상 징후가 이어지는데도 원인도, 대책도 없다"고 지적했다.
광주시는 피해 주민 지원 방안을 제시했다. 공사손해보험 제도를 통해 보수 공사비뿐 아니라 영업손실, 정신적 피해까지 지원하고 있으며, 손해보험금에 불복할 경우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한 배상조정 절차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대피명령에 따라 모텔 등에 머무는 주민들을 위해 임시거처로 사용할 수 있는 아파트 26호를 확보했으며, 안전을 위해 신속한 이주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영걸 광주도시철도건설본부장은 "법과 원칙이 정하는 기준 안에서 지원과 협조를 통해 주민들의 일상 복귀를 돕겠다"며 "건축물에 대한 결과가 이렇게 나온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호남취재본부 송보현 기자 w3t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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