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단 보완 '조용한 협력'
건설 현장 감정결과도 뒤집어
#1. 법무법인 세종은 4월 시공사가 시행사를 상대로 제기한 수십억 원대의 추가 공사비 청구 사건에서 전문심리위원 제도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항소심에서 감정 결과를 탄핵시켰다. 사건은 원고 A사가 피고 B사의 기본설계도면을 바탕으로 공사비를 추산해 계약을 체결했으나, 착공시점에 제공된 실시설계도면과의 차이로 인해 추가 공사비를 청구하면서 불거졌다. A사는 철근량 증가를 근거로 추가 공사비를 요구했고, 감정인은 이를 기본설계도면 변경에 따른 공사비 증가로 판단했으며, 1심 재판부도 이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그러나 세종은 계약상 기준이 실시설계도면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감정 방식의 오류를 지적했고, 전문심리위원으로부터 "감정인이 기본설계도면을 기준으로 물량을 산출했으나 이는 이른바 '개산견적'으로, 정확성이 낮고 신뢰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확보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건축심의도서를 토대로 한 물량은 정확할 수 없으며, 개산견적만 가능하다"며 "시공사가 자체 견적으로 공사비를 정했다면 철근량은 시공사가 스스로 예측했어야 하며, 실시설계로의 구체화만으로 추가 공사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A사의 추가 공사비 청구는 모두 기각됐다.
#2. 대한법률구조공단은 지난 4월 15일, 양조장을 운영하는 C씨가 한국전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전문심리위원 제도를 활용해 7500여만 원 지급 판결을 이끌어냈다. 공단은 C씨를 대리해 "한전이 설치·관리하는 전선 간 마찰로 화재가 발생해 건물이 전소됐다"고 주장했다. 한전은 "태풍에 따른 불가항력적 자연재해"라며 반박했다.
공단은 전기·화재 전문가를 전문심리위원으로 선정해, 전선이 건물과 지나치게 근접해 강풍으로 접촉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화재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대구지법 경주지원은 "전선이 건조물과 근접하게 설치된 경우 일정한 이격 거리를 확보해야 함에도, 한전이 이를 소홀히 한 것이 화재의 원인 중 하나"라며 한전의 과실을 일부 인정하고, 책임 비율을 50%로 결정했다.
전문심리위원 제도가 법원의 판단을 보완하는 '조용한 협력자'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전문심리위원의 의견을 반영해 감정 결과가 뒤집히는 항소심 판결이 나오며, 일부 분야에서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4년, 고려대 산학협력단이 법원행정처에 제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전문심리위원 참여 결정 건수는 2020년 1181건에서 2023년 1276건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2016년부터는 법원에 상근하는 '상임전문심리위원' 제도가 도입돼 건설 및 의료 분야에서 고도의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건설 분야에서 활동 중인 전국 고등법원 소속 상임전문심리위원의 월평균 처리 건수는 2017년 2.3건에서 2023년 13.5건으로 늘었고, 최근 4년간 월평균 11.9건을 기록했다.
전문심리위원의 설명 및 의견은 증거 능력은 없으나, 재판부가 전문적 쟁점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 실질적 도움을 준다. 감정인의 감정 결과는 감정 방법 등이 경험칙에 반하거나 합리성이 없는 등의 현저한 잘못이 없는 한 이를 존중해야 하며(2006다67602, 67619 등), 전문심리위원이 한 설명이나 의견은 증거 방법이 되지 않는다(2013다18332)는 대법원 판례가 확립돼 있다.
서울고법 건설 전담부에서 근무했던 강주헌(56·사법연수원 31기)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이전보다 재판부와 당사자 모두 전문심리위원제도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전문심리위원 의견이 재판에 직접적인 재료가 되는 증거는 아니지만, 사안이 복잡한 경우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감정 사항들을 결정하거나 감정 결과를 제대로 검증하는 차원에서 활용도가 높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소액 사건에서는 감정 절차를 밟게 되면 감정 비용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며 "전문심리위원제도를 활용하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해 사건을 조정이나 협의 단계에서 종결시킬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건설 전담부에서 근무했던 배지호(45·40기) 법무법인 한평 변호사는 "재판부가 전문가에게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직접 질문할 수 있어 사건에 대한 이해도를 상당히 높일 수 있는 제도"라며 "예를 들어 감정 결과를 토대로 지체 상금이나 하자보수 관련 손해배상 소송에서 100억 원이 인정되더라도 최종적으로 재판부가 금액을 조정하게 되는데, 실질적인 손해배상 책임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어떤 사항을 검토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문심리위원의 의견을 참고해 객관적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 변호사는 "건설 소송은 일반적인 소송과 달리 감정인의 역할이 절대적인 경향이 있어 전문심리위원 제도가 효용이 높다"며 "이 제도는 조정처럼 양 당사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데도 종종 소극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라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감정 결과에 대한 재감정이 기각되는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전문심리위원 제도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하연 법률신문 기자
※이 기사는 법률신문에서 제공받은 콘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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