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형 콘텐츠로 '경험하는 공간' 선사
외국인 특화 프로그램 인기 올해 확대
내달 4일까지 4대궁·경희궁·종묘서
궁은 왕의 생활·정치 공간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4대 궁(경복궁·창덕궁·덕수궁·창경궁)도 예외는 아니다. 자연과 환경에 순응하며 설계돼 멋스럽다. 왕조의 철학과 이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국가유산청과 국가유산진흥원은 전통의 깊이를 간직한 궁에 체험형 콘텐츠를 더해 관람객의 경험을 확장한다. 이른바 '보는 공간'에서 '경험하는 공간'으로의 전환이다. 전통문화 행사를 넘어 외국인이 찾는 참여형 축제로 개발한다.
최전선에는 다음 달 4일까지 4대 궁과 경희궁, 종묘에서 열리는 '궁중문화축전'이 있다. 매년 봄·가을마다 열리는 국내 최대규모의 문화유산 축제이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관람객 620만 명이 방문했다. 지난해에는 역대 최다인 96만 명이 몰렸다. 이중 22%는 외국인이었다. 전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가능성을 확인한 국가유산진흥원은 지난해부터 변화를 시도한다. 글로벌 예약 시스템을 도입하고, 외국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강화한다. 궁을 사진 찍기 좋은 나들이 장소에서 전통의 가치를 함께 나누는 역사 문화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진미경 국가유산진흥원 궁중문화축전 팀장은 "외국인 상당수가 도심에 있는 전통 건축물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 아쉬워했다"며 "지난해 시도한 외국인 특화 프로그램이 기대 이상으로 인기를 끌어 올해 그 수를 늘린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궁을 방문한 외국인의 25% 이상이 궁중문화축전을 경험했다"며 "관광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만큼 세계인의 축제로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국가유산을 활용해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례는 드물다. 대부분 해설 프로그램이나 음악회, 교대 의식 정도로 궁의 표정과 언어를 전달한다. 윤지현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궁능서비스기획과 사무관은 "일반인을 궁에 초청해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할 것"이라며 "보존과 복원의 가치를 살리면서 색다른 문화 체험을 제공한다면 새로운 흐름을 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유산진흥원은 외국인의 관심사와 체험 선호를 반영해 특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그중 하나는 지난해 내국인에게 선보였던 '아침 궁을 깨우다'이다. 관람객이 없는 아침에 창덕궁 숲길을 산책하며 궁의 운치와 자연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금천교에서 출발해 인정전, 선정전, 희정당, 대조전, 성정각, 낙선재, 부용지, 연경당 순으로 돌아본다. 프랑스 출신 방송인 파비앙이 가이드로 나서 창덕궁의 역사와 전통도 알려준다.
진 팀장은 "관람객이 없는 새벽에 궁을 보며 느꼈던 고즈넉함 아름다움을 공유하고자 기획했다"며 "내국인의 만족도가 높아 외국인 전용 회차를 신설했다"고 설명했다.
조선 왕의 식문화를 체험하는 '황제의 식탁'도 올해 외국인을 대상으로 운영된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장녀 앨리스 루스벨트가 1905년 국빈 자격으로 대한제국을 방문해 받았던 오찬을 재현한다. 골동면과 장김치, 화양적, 전복초, 전유어, 편육 등이다. 골동면은 메밀국수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간장 양념으로 비벼 먹던 궁중음식이다. 국가무형유산 '조선 왕조 궁중음식' 보유자 한복려 씨가 직접 조리한다.
진 팀장은 "궁중음식과 대한제국의 국빈 연회문화를 동시에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라며 "고종황제가 불안한 정세에도 품격 있는 연회로 나타낸 자주 국가를 향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람객 상당수가 한복 차림인 점에서 고안한 '한복 입은 그대, 반갑습니다'도 주목할 만하다. 한복을 입고 창덕궁 약방 등 데이트 코스를 누비는 커플 맞춤형 프로그램이다. 궁중다과를 즐기고 연서(戀書)를 쓰며 특별한 추억을 만든다. 주 무대인 창덕궁 약방은 조선 왕실의 건강을 책임졌던 의료기관이다.
국가유산진흥원은 외국인 관람객이 늘어난 만큼 접근성과 편의 증진에도 공을 들인다. 모든 프로그램에 외국인 전용 해설사를 배치하고, 안내 인력도 외국어 실력 우수자 위주로 선발했다.
윤 사무관은 "예산 부족으로 자원봉사자의 비중이 높은 편이나 글로벌 축제의 초석을 쌓기에 부족함은 없다"며 "외국인 전용 회차, 영어 해설 프로그램, 글로벌 예약 시스템 도입 등을 꾸준히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궁중문화축전을 K-컬처의 대표 브랜드로 육성해 전통문화의 산업적 성장을 선도하겠다"고 말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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