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외교관 "정부·기업 관계 재설정해야"
기술패권 경쟁 심화…첨단산업은 곧 국력
기업이 끌고 나가면 정부가 뒤에서 밀어야
"정부가 기업과의 관계를 새로 설정하기 위해 고민해야 합니다. 갑의 위치에서 규제하려고만 할 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함께 싸울 파트너로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게 필요합니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우리 기업들의 '해외 대관' 조직을 분석한 기사를 내보낸 뒤 전직 대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외교부 출신들이 '10대 그룹' 대관 요직을 꿰찼으며 북미 시장에 진출한 주요 기업 4곳이 최근 5년간 대미 로비에만 1000억원을 들였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기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들려줬다. 외교부 출신 인사들의 기업행이 실질적인 필요에 따른 것이라 해도 정부와 기업 간 유착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담겨 있었다.
전직 외교관이 털어놓은 우려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됐다. 한국은 정부 주도의 성장 모델로 경제를 키웠다. 정부와 기업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기울었다. 기업들은 정부의 정책·규제 방향에 맞춰 움직여야 했고 정치권의 말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최근 해외 대관 활동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정부보다 능동적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정부가 제 기능을 못하는 사이 기업들은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출장단을 꾸려 해외로 나서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과 공급망 재편 등 세계 각국의 경제 안보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기업이 직접 상대국 정부를 설득하고 움직일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기업과 정부가 전략적 협력은 더욱 중요해졌다. 반도체·전기차·배터리·인공지능(AI) 같은 첨단산업 분야에선 기업 경쟁력이 곧 국력이다.
우리 기업들의 보폭은 전 세계로 넓어졌지만, 그런 기업들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갖가지 규제로 옥죄는 풍토 역시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야 할 때"라는 전직 외교관의 당부는 이런 맥락을 담고 있다.
기업들의 해외 대관 활동이 늘어나는 건 단순히 개별 기업의 이익 추구에 머물지 않는다. 불확실한 국제 통상질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은 서로 협력하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 정부가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규제 중심의 갑(甲)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 속에서 함께 뛰는 든든한 파트너로 관계를 재정립할 때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외교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도 국익을 최대한 키우기 위한 협상이다. 과거 덩샤오핑은 '흑묘백묘론'을 외쳤다. 기업과 정부 모두 국익을 위한 외교가 필요하다는 '본질'을 잊어선 안 된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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