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도 없고 방도 아닌 곳, 불빛 덕에 고유한 공간이 된다.
해는 막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지만, 땅에는 낮의 빛이 아직 고여 있는 시간, 폐허 사이로 난 길가에 줄지어 매달린 작은 전등에 불이 켜져 있다. 어스름 녘 자그마한 불빛들은 낮과 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시간의 독보적 존재다. 하루 수천 장도 넘게 통신선을 타고 들어오는 사진들 사이에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이 보였다.
길가 막대기와 부서진 콘크리트 더미에 연결된 전선에 달려 길게 늘어선 작은 전등 불빛은 조금씩 어두워질수록 서서히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었다. 폭격으로 폐허가 되기 전 이 도시의 집과 거리에도 저마다의 불이 들어왔을 것이다. 지나가는 차들의 불 켜진 창에 집으로 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을 것이고 집들의 창 너머에는 저마다의 독립된 세계가 은은하게 온전했을 것이다.
라마단 기간 이슬람 교인들은 해가 지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는 것을 계율로 한다. 해가 지고 나면 사람들은 모여서 첫 식사 '이프타르(Iftar) '를 먹는다. 라마단을 맞아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저녁을 먹기 위해 전선을 끌어와 길가에 막대를 세우고 전등을 매달았다. 전쟁 중 폐허에도 함께 살아간다는 존재 확인과 세계는 여전히 돌아간다는 선언처럼 보였다. 아직 남은 낮의 흔적 때문에 어둠이 세상을 완전히 숨기지 못한 때, 미리 켜진 불빛은 약간의 풍요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곧 어둠이 닥칠 테지만 이미 불이 켜져 있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안도감 말이다. 그곳이 집이었던 사람들이 폐허 위에 쳐진 천막과 난민촌 텐트에서 나와 길 양옆 길게 늘어선 불빛 아래 의자와 식탁을 놓고 앉아 저녁을 먹었다. 창도 없고 방도 아닌 곳에서 맞는 저녁이지만 불빛 덕에 그곳이 사람들의 고유한 공간임을 말한다. 옆에 있는 가족 친지 친구들의 불빛을 받은 얼굴의 온기가 불안과 외로움을 덜어주며 말할 수 없는 유대감을 줄 것이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작은 백열전구들이 만드는 빛의 텐트는 그곳을 큰 공동체의 스타디움 같은 공간으로 만들었다.
사진을 본 며칠 후, 이스라엘 당국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압박하기 위해 가자지구 전력 공급을 중단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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