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랭식 대비 냉방 전력 93%↓
먼지·습도 완벽 차단…서버 수명↑
글로벌 기업, 액침 냉각 기술 '주목'
'전기 먹는 하마'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에 대응하기 위해 전력 공급을 확대하고 송·배전망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기 소비 자체를 줄이는 일도 중요한 과제다. 미래 전기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AI 데이터센터 전력의 40%는 냉각에 쓰인다. 열관리만 잘해도 전기 소모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데이터센터 열을 식히기 위해 최근 주목받는 방식은 액침 냉각 기술이다. 지금까지 사용해온 공랭, 수랭식과 달리 특수 용액을 채운 수조에 서버를 보관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해외에선 아예 차가운 바닷물 속에 데이터센터를 짓는 실험도 하고 있다.
액침 냉각 기술은 어디까지 왔을까. 지난달 19일 인천 남동구 SK텔레콤 인천 사옥에선 관련 기술 연구가 한창이다. 보안관문을 거쳐 도착한 내부에는 커다란 관 하나와 천장크레인이 나타났다. 관처럼 생긴 파란색 수조가 액침 냉각 기술을 활용해 서버를 담가놓는 수조식 서버랙이다.
액침 냉각은 서버를 전기가 흐르지 않는 비전도성 특수 냉각유(플루이드)에 담가 열을 식히는 기술이다. 지금까지는 데이터센터 내 서버에 차가운 바람을 불어넣어 공기를 순환하는 공랭식을 많이 썼다. 공랭식은 특수 공조기, 압축기 등 전력 소모가 많은 부품을 사용한다. 이를 개선한 게 수랭식이다. 수랭식은 서버에 냉매가 흐르는 파이프를 직접 접촉해 온도를 내리는 방식이다. 액침 냉각은 서버를 아예 차가운 플루이드에 담그는 만큼 냉각 효율이 높다.
수조 안에는 20여대의 서버가 빼곡히 꽂혀있었다. 실제 서비스에는 투입되지 않고 플루이드에 담긴 상태에서도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실험용 서버다. 플루이드는 전기는 통하지 않으면서 열전도는 높아 효율적으로 서버의 온도를 낮출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엔 플루이드가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나, 온도 조절을 위해 끊임없이 천천히 순환하고 있었다. 수조의 오른쪽 면을 열어보니 두툼한 펌프 여러 개가 보였다. 서버와 만나 뜨거워진 플루이드는 펌프를 통해 열변기로 이동하고, 이곳에서 차가운 물과 간접적으로 만나 식혀진다. 차가워진 플루이드는 다시 서버가 담긴 수조로 공급된다.
최우신 SK텔레콤 AT 인프라 엔지니어링팀 매니저는 "플루이드는 무색무취에 가깝지만, 서버를 담가둔 플루이드를 실험하기 위해 발열 봉 70~80개를 집어넣어 플루이드를 끓여보고 태워봤다"며 "플루이드에 산화 현상이 일어나 색이 갈색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최 매니저는 "온도는 물의 온도에 수렴한다. 예를 들어 물이 10도일 때 플루이드가 40도 이상 올라가도 물과 만나 15~20도로 떨어질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의 실험 결과 기존 공기 냉각 대비 냉방 전력의 93%, 서버 전력의 10% 이상이 절감돼 총 전력 37%가 절감되는 효과가 확인됐다.
책장처럼 서버를 꽂아놓는 기존 랙에는 서버 1대 혹은 2대씩만 꼽을 수 있지만, 액침 냉각 기술을 활용하면 같은 공간에서 수용할 수 있는 서버가 7~8대로 늘어난다. 좁은 공간에 더 많은 서버를 집적시킴으로써 공간 점유 비용이나 전력을 아낄 수 있다.
또 공기 냉각 방식에선 먼지와 습도를 조절해 주기 위해 추가적인 설비와 전기가 사용되지만, 플루이드 속에 잠긴 서버는 먼지와 습도로부터 자유롭다. 서버의 기대 수명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액침 냉각 기술이 데이터센터의 전기 사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알려지자 글로벌 기업들은 이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연구와 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블랙웰의 발열 문제가 제기되자 액침 냉각 기업과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KT 클라우드도 지난해 액침 냉각의 기술검증을 받았다. KT클라우드는 액침 냉각 기술을 통해 기존 공랭식 대비 서버실 유틸리티 전력량 58% 절감, 서버 팬 전력량 15% 절감, 서버실 면적 70% 이상 감소, 팬 소음 저감, 열 교환 효율 상승을 통한 서버 수명 연장 등을 이뤄냈다고 설명했다. KT클라우드는 앞으로 직접 칩 냉각(D2C)과 컴퓨팅 유체 역학(CFD) 프로그램을 도입할 예정이다.
SK엔무브,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업계도 액침 냉각을 위한 플루이드 개발에 뛰어들었다. SK엔무브는 '지크 이-플로(e-FLO)', GS칼텍스는 '킥스 이멀전 플루이드 에스(Kixx Immersion Fluid S)'라는 이름을 달았다. SK텔레콤은 기가컴퓨팅, SK엔무브와 차세대 냉각 기술 개발을 위한 업무 협약(MOU)을 체결하기도 했다.
다만 액침 냉각 기술은 초기 단계에 있다 보니 여전히 한계점이 존재한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서버를 유지 및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서버를 점검하기 위해선 15분에 걸쳐 크레인에 매달아 서버를 꺼내고, 용액이 전부 빠져나가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존의 방식보다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이 외에도 안전관리, 내진 규제, 플루이드 처리 및 폐기 등 보완해야 할 숙제가 남았다.
인천=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