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의 이인자인 커트 캠벨 부장관은 단호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다음날인 지난 4일 즉각 “심한 오판(badly misjudged)”이라고 비판했다. 또 간접화법으로 에두르긴 했으나 “불법적(illegitimate)”이라고까지 했다. 외교 언사치고는 이례적으로 강도가 세다. 그만큼 어처구니없는 사안이었다는 말일 게다.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는 ‘불확실성(uncertainty)’이라는 지옥문을 열어젖혔다.
1주일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U(불확실성)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 1주일 사이 그 뇌관을 제거할 기회가 있었다. 대통령 탄핵 절차. 하지만 국회에서 이 작업은 뚜껑도 못 열고(의사정족수 부족) 멈췄다.
이제 그 여파는 오롯이 국민과 기업들이 감당해야 한다. 이른바 ‘계엄 비용’ ‘탄핵 비용’이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그 대가는 한국의 5100만명 국민이 할부로 치르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액수가 커 두고두고 갚아야 한다는 말이니, 폐부를 찌르는 비꼼이다.
하나씩 보자.
무엇보다 국가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세계 8대 강국, 10대 경제대국의 위상이 무색해졌다. S&P, 무디스, 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정치 리스크가 장기화할 경우 신용 하방압력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K-컬처, K-푸드 등으로 힘겹게 쌓아올린 국가인지도도 색이 바랬다. 2024년에 한국이 여행위험국이라는 게 말이 되나.
당장 치솟는 환율도 걱정이다. 한때 마지노선이었던 원·달러 환율 1400원대는 당분간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다. 더 뛰어 1500원대로 올라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가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미국증시, 가상자산 쪽으로 자금이 이탈하면서 한국 증시는 이미 수급이 무너진 상태였다. 이런 마당에 계엄과 탄핵이라는 돌발악재가 겹쳤다.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에서 1조원 넘게 투매하며 등을 돌리고 있다. 국민연금 등 기관이 힘겹게 떠받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당분간 약세가 불가피해 보인다.
예산안 처리, 반도체법 및 자본시장법 개정, 상속세 개편 등 한시가 급한 현안들도 올스톱됐다. 경쟁국들은 뛰고 있는데, 우리만 사실상 뒷걸음치게 된 형국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포럼에 나와 “우리 각자가 나와 다르게 보이거나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느 정도 ‘관용’을 보여야 한다는 마음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며 “이는 비교적 동질적인(homogeneous) 국가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이번 주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보라”라고 했다. 그는 인종, 민족, 종교 측면을 보고 한국을 ‘비교적 동질적인 국가’라고 본 듯하다. 하지만 미국도 그렇듯이 한국도 이미 정치적으로 두 동강 난, 이질적인 나라다. 그러니 이런 황망한 일이 벌어졌고, 그러고도 한쪽은 ‘탄핵시계(탄핵 후 조기대선 노리는 더불어민주당)’, 다른 한쪽은 ‘재판시계(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결과 도출 후 대선 치르려는 국민의힘)’만 쳐다보며 ‘U의 공포’를 키우고 있는 게 아닐까. 4류 정치·3류 관료가 2류 기업·1류 국민의 숨통을 죄고 있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30년 전 레토릭이 아직도 유효하니 서글프다.
김필수 경제금융매니징에디터 pils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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