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담보로 빚을 내 설비를 들였고, 수출 상담을 위해 전쟁 중인 나라에도 날아갔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회사를 키웠는데, 요즘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최근 만난 중소제조기업 대표 K씨의 한탄이다. 볼트 수출로 연간 5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그는 최근 중국산 볼트 완제품 수입량이 늘어나면서 시름이 크다. K씨는 "중국산이 품질도 많이 좋아진 데다 가격도 20~25% 저렴해 국내 업체들이 다 죽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관세맨'을 자처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중소기업의 불안감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K씨는 "우리 제품 3분의 1이 미국으로 간다. 관세가 오르면 그만큼 손해를 감수하고 예전 값으로 팔거나 값을 높여야 하는데, 고객들이 가격에 얼마나 민감한 줄 아느냐"면서 "기업 선에서는 해결 못 할 대외적 요인이 너무 많다. 정부가 빨리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은 국내 중소기업의 최대 수출국이다. 올해 3분기 국내 중소기업계의 대미 수출액은 45억5000만달러로 중국(43억6000만달러)보다 많다. 반면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무역수지 적자국가 8위에 있는 국가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는 444억 달러 흑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트럼프 정권의 한국을 향한 통상 압박은 더 강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19일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개최한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중소기업 영향 및 대응방안' 세미나에서 김정현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트럼프 2기가 들어서 무역 상대국에 보편적인 관세를 부과할 경우, 우리 중소기업의 대미 수출은 12.6~21.6% 감소할 것이며, 주요 영향 품목군은 전기전자, 기계류, 철강, 섬유의복, 화학 등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외에도 "대기업의 대미 수출 감소로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도 생산 감소가 예상되고, 기업이 생산지를 미국으로 이전할 가능성에 대한 대응책이 필요하다", "대기업 중소기업간 협상력 차이로 대기업이 외환리스크를 중소기업에 전가할 수도 있으므로, 대금결제방식에 대한 조사도 필요할 것"이라는 등의 대응책이 제시됐다. 한국 중소기업의 현실을 고려한 제안이다.
대기업은 글로벌 동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전략을 세우고, 그에 따라 미국이라는 지구상 가장 매력적인 시장을 잡기 위해 막대한 자본력으로 공장 이전 투자를 고민할 수도 있고, 원부자재 공급선 변경을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은 치솟는 자재 값과 인건비에 허덕이며 계약된 납기 물량을 맞추기도 버겁다. 임박한 변화를 뻔히 예상하면서도 속수무책이 아닐까.
중소기업인들을 만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시급하다", "하루빨리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는 말이었다. 정부에 기댈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인들의 답답함이 묻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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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대외경제장관 간담회를 열고 "트럼프 차기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원칙적으로 매주 대외경제장관 간담회를 개최,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정부 차원의 대응 방향을 조율하겠다"고 밝혔다. 중소벤처기업부도 지난달 26일 '트럼프 2기 행정부 대비 중소기업 지원 TF'를 발족했다. 정부 차원의 대응책이 하루빨리 제시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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