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은행이 합병해 설립된 통합은행이란 측면, 오랜 기간 민영화되지 못한 역사 등으로 은행에 분파적이고 소극적인 문화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음지(陰地) 문화를 없애지 않고선 우리은행이 바로 설 수 없다고 본다."
음지 문화.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10일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 부정 대출 사건을 계기로 표면화된 우리은행 조직문화에 내린 진단명이다. 5대 금융지주회사(KB·신한·하나·우리·NH농협) CEO 중 최초로 국정감사장에 선 임 회장은 이날 국민에게 사죄하면서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내부통제 강화, 올바른 기업문화 정립에 매진하겠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잇단 수백억원대 횡령, 부정대출 사건이 발생한 우리은행의 조직문화는 한두 해에 고착된 것은 아니다. 상업·한일은행의 통합으로 시작해 평화은행을 흡수하는 등, 수 차례의 민영화 시도를 겪어온 조직인 만큼 20여년간 켜켜이 쌓여온 문제다. 성과 대신 분파와 연줄에 의존하는 음지 문화라는 임 회장의 표현이 시의적절해 보이는 이유다.
임 회장은 이와 함께 국정감사장에서 조직쇄신 구상도 공개했다. 이번 사태가 '제왕적 회장'으로부터 비롯된 만큼, 회장의 권한과 역할을 조절하고 계열사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키로 했다. 이외엔 사외이사로 구성되는 내부통제위원회를 신설하고 외부 인사가 수장을 맡는 윤리경영실을 산하에 두는 등 이사회의 권능도 강화키로 했다. 이러한 진단과 쇄신책은 아시아경제가 지난 9월 2~5일 '사면초가 임종룡호(號)' 기획시리즈를 통해 우리은행 조직문화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것과 결을 같이한다.
하지만 2022년 우리은행 기업개선부 직원의 700억원대 횡령 사고 이후 확인했듯 쇄신의 '계획'과 '실천'은 다른 측면이 있다. 당시에도 여러 제도개선안이 제시됐으나 결과적으로 손 전 회장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쇄신계획은 실질적으로 실천되지 못했다. 같은 시기 그룹 최상부층을 중심으로 부정대출 사건이 벌어진 점을 고려하면 그 자신이 변화할 의지, 쇄신계획을 실천할 의지가 없었다고 보는 게 더 적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앞으로 쇄신을 실천해 나가야 할 임 회장 체제에서도 여러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지주회사 및 회장으로의 과도한 권한 집중, 특정 학맥·인맥의 부상 등은 우리은행 조직문화를 개선치 못하게 하는 장애물로서 작용해 왔단 평가다. "신임 회장-행장 체제에서도 과거와 같은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는 금융감독당국의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벌써부터도 "임기가 절반밖에 남지 않은 경영진인 만큼 한계도 여전하다"는 회의적 시각도 만만찮다. 쇄신의 요체가 실천이라면, 실천의 요체는 임 회장 등의 '의지'다. 쇄신계획이 무용지물이 됐던 과거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그 자신부터 내려놓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게 쇄신의 의지를 보여준다면 조직문화의 변화를 위한 실천도 진전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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