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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흉기없는 살인, 악성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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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김포시청 공무원이 한 일이라곤 자신이 맡은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도로에 난 구멍을 메우는 일이다. 공사는 교통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차량의 이동이 적은 밤이나 새벽에 했다. 이 시간에도 차들은 다닌다. 불편하기 마련이다. 이 불편을 감수하는 것은 행정서비스의 수요자인 국민의 몫이다. 참기 어려운 불편이나 불만이 있다면 전화나 이메일, 게시판, 아니면 국민신문고 등 여러 경로로 관공서에 전달할 수 있다.

이경호 이슈&트렌드팀장

이경호 이슈&트렌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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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시의 경우는 달랐다. 온라인카페에서 불만이 공유됐고 누군가 담당공무원, 그것도 현장의 말단직인 주무관의 전화번호를 공개했다. 다양한 채널로 통하는 의견수렴의 장, 그중에서도 폭주하는 악성민원이 한 곳으로 깔때기처럼 몰렸다. 민원의 99%는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해결된다는 말이 있다. 나의 불만, 불평, 울분을 토해내다 보면 어느새 감정이 누그러지게 된다. 하지만 특정인에 대한 좌표찍기(신상공개)와 민원폭주는 그 선을 넘어섰다. 말로 그치지 않고 폭행도 비일비재하다.


악성민원을 접하는 공무원들은 전화가 울리기만 해도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고 말한다. 2021년 1월 숨진 채 발견된 강동구청 공무원은 임용 1년 차의 20대였다. 구청에서 불법 주정차 과태료 이의신청 관련 민원업무를 맡은 1년 동안 6000건, 하루 평균 25건의 민원을 담당했다. 사회복지 담당공무원의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민원인이 대다수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이고 민원대상은 삶과 직결된 먹고 사는 문제이다 보니 악성민원이 빈번하다. 재소자를 상대하는 교정직 공무원, 녹음기를 가방에 넣고다니는 아이들을 지켜줘야 하는 특수교사들, 폭언에 허위신고에 행정력낭비까지 걱정해야 하는 119와 112 등의 고충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도 일부에선 공무원이 여전히 갑이고 상전이지만 대다수는 공복이다. 위상도 많이 떨어졌다.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받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필요한 행정서비스를 실천해주는 존재’다. 당연한 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공직사회도 문제다. 젊은 층이 참을성이 부족하거나 민원 대응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사람이 부족하고 처우가 미흡한 것은 어떻게 해결한다고 해도 떳떳하게 업무를 수행하다 악성민원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때 과연 상사와 조직, 국가가 나를 지켜줄 수 있는가의 믿음이 없다.


공직사회의 악습은 악성민원을 하위직에 대물림하게 만든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무원 가운데는 직장 내 스트레스에 시달린 경우도 많다. 28일부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면 선거 유세 관련 민원이 폭주한다. 선거 운동 소음 피해, 선거 현수막 관련 불편, 선거운동 차량 교통법규 위반 신고, 선거 벽보 부착 불편 등이 대다수다. 선거를 경험해본 이들은 치를 떤다. 하위직에 또 떠맡긴다면 불상사는 재연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난 26일 승진 소요 기간을 줄이고 초과근무 상한을 높이는 내용의 ‘공무원 업무집중 여건 조성방안’을 발표했다. 악성민원과 관련해서는 4월 중 종합대책을 내놓기로 했다. 이번 대책은 하드웨어 성격이다. 공직사회가 달라지고 민원인의 인식전환과 같은 소프트웨어도 함께 달라져야 한다. 아무리 인구가 줄어도 행정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 공무원의 존재는 더 중요해지는 데 공무원에 대한 인심은 각박하지 그지없다. 민원을 넣을 때 수화기 건너편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부터 생각해보자.




이경호 이슈&트렌드팀장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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