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 베테랑 풍수사 김상덕役 최민식
장재현 감독, 이야기 중간에 끊는 대담한 시도
풍수사 본연 자세로 불안한 이음새 봉합
'명량'·'대호' 등에서 빚어온 마음의 연장선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는 악지(惡地)를 크게 두 번 판다. 조명하는 방식은 판이하다. 전반부는 동기감응(同氣感應)의 실체를 파악하며 벌어지는 사건들로 긴장과 공포를 조성한다. 혼령은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유리 창문에 비치거나 실루엣으로만 보인다.
후반부는 정령이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외형이 난폭하면서 용맹한 무사라는 뜻의 '오니무샤'라서 크리처물(사람을 잡아먹거나 살해하는 괴물이 나오는 작품) 성격이 강해진다. 전개 또한 500년 전 사건을 거론하고, 퇴치 방법을 내레이션으로 알리는 등 설명적으로 바뀐다.
장재현 감독은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는다'라는 대사처럼 이야기를 중간에 끊고 싶었다"고 밝혔다. "전반부 이야기는 후반부 그것과 꽤 연관이 깊은 연막이에요. 실체를 뒤에 숨기는 구조가 주제와 어울릴 것 같았죠."
믿는 구석이 있었다. 베테랑 배우 최민식의 관록이다. 별다른 전사(前史) 없이 40년 경력의 풍수사 김상덕을 보여준다. 악지의 흙을 맛보고 바로 뱉어버리는 얼굴 등에 대가의 풍모를 불어넣는다. 지관(地官)답게 모든 땅의 기운은 눈으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단호하고 냉정하다. "여긴 듣도 보도 못한 음택이야. 잘못 손댔다가는 지관부터 일하는 사람들까지 싹 다 줄초상 나, 이 사람들아. 악지 중의 악지다."
최민식은 "평생 풍수의 근본인 자연을 보고 관찰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풍수사는 전국의 산들을 답사하며 터의 모양새, 흙의 질감 등을 연구한다고 해요. 무언가를 깊이 들여다보는 태도가 몸에 뱄겠구나 싶었죠. 산수의 형세 국면은 물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조차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 것 같았어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눈이 필요했죠."
이석정·박채양·최주대 작가가 공동 집필한 '조상을 잘 모셔야 자손이 번성한다(2007)'에서 풍수사를 설명한 맥락과 궤를 함께한다. "땅을, 혹은 산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은 어머니의 품속과 같은 명당을 찾아낼 수 있다. 구태여 풍수의 논리나 이론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 (중략) 순수한 인간적 본능에 의지해 땅을 바라본다. 거기에 어머니의 품속 같은 따뜻함을 추구하는 마음이 스며들어 있지 않을 수가 없다. 그를 좇으면 된다."
문제는 끊어지는 이야기의 허리다. 김상덕은 마무리된 전반부 사건을 계속 파고든다. 계기는 파묘에 참여했던 일꾼의 병치레. 그는 다시 찾은 악지에서 원인인 일본 귀신 누레온나(여성의 머리를 한 일본 뱀 요괴)와 첩장(다른 사람 묘에 몰래 암장한 관)을 확인한다. 전자는 화장하면 그만이고, 후자는 굳이 관여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김상덕은 "이 양반을 여기 그냥 놔드릴 수는 없잖아"라며 무당 이화림(김고은)과 장의사 고영근(유해진), 법사 윤봉길(이도현)에게 도움을 청한다.
무모한 접근은 또 다른 관에서 나온 오니가 인간과 돼지를 해하고 불덩이로 변한 걸 확인한 뒤에도 꺾이지 않는다. 김상덕은 윤봉길이 입원한 병원에서 '한반도의 척추'라고 설명된 고성 산수 사진을 보며 오니가 쇠침을 지키는 정령이라 확신한다. 오니가 원한이 없는 사람도 가차 없이 죽인다는 걸 알면서도 곡괭이를 매고 산에 오른다. 부상한 윤봉길을 낫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후손이 살아갈 땅을 지키기 위해서다.
전반부에 이토록 원대한 생각을 다룬 장면은 없다시피 하다. 오히려 돈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 장면 등이 배치돼 타락한 게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 최민식은 매끄럽지 않은 이음새를 풍수사 본연의 자세로 돌파한다. 바로 우리 땅에 대한 애정과 후손 번성이다. 그는 "결혼을 앞둔 김상덕의 딸이 뱃속에 손주를 품고 있다는 설정을 계속 머릿속으로 되뇌었어요"라고 밝혔다.
"김상덕이 악지라는 이유로 파묘를 거절하는 신에서 이화림이 화내며 말하잖아요. '아니, 애가 아프다잖아, 네?'라고. 그 대목에서 '태어날 손주를 떠올렸겠구나' 생각했어요. 그 기억이 후반부까지 연결된다고 봤고요. 물론 두려웠겠죠. 저라면 그런 산에 못 올라가요(웃음). 하지만 김상덕은 풍수사잖아요. 40년 동안 땅 파먹고 살면서 소위 있는 사람들만 상대했겠지만 내 손주가 밟고 살아갈 땅이란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있을 거예요. 흉한 것을 방치할 수 없다는 양심, 그것이 풍수사의 기본 도리라고 봐요."
순수한 마음으로 구현한 사랑은 땅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그에 의지해서 살아가야 할 모든 사람에 대한 것을 포함한다. 최민식은 이미 다양한 영화에서 여러 형태로 보여줬다. '명량(2014)'에서 악전고투로 전의를 상실한 병사들과 두려움에 가득 찬 백성들을 위로했고, '대호(2015)'에서 지리산의 산군(山君)으로 불린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와 운명을 함께했다. '봉오동전투(2019)'에서 독립군 유해를 한반도로 부는 바람에 흩뿌리며 조국 재건을 다짐하기도 했다. '파묘'는 그렇게 빚어온 사랑과 정신의 연장선이다.
"우리 땅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싶다는 장재현 감독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어요. 풍수와 무속신앙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핵심은 마음이에요. 나를 사랑하는 할머니가 곧 종교이자 믿음이죠. 많은 사람이 열린 마음으로 우리 문화와 풍습을 즐겼으면 좋겠어요. 그 속에 담긴 사랑과 정신을 생각하며…."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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