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청소년 유혹하는 숏폼 '음주먹방' 제동 걸어야
"여러분 위험합니다!" 휴대폰 화면의 남성이 큰 컵에 따른 양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알고리즘에 따라 이어진 영상에선 다른 남성이 소주를 병째로 비웠다. 수도권 인문계 고2 남학생이 얼마 전 숏폼 플랫폼 ‘틱톡’에서 찾아본 속칭 ‘음주 먹방’이다. 우연히 술 마시는 동영상을 보게 된 이 학생은 "어른들이 술을 마시더니 연예인처럼 기분 좋은 표정으로 즐거워해서 궁금했다"고 기자에게 느낌을 전했다. 그 뒤로 이 학생은 성인인증이 필요 없는 해외 플랫폼에서 술 마시는 숏폼을 찾아보다가 실제로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미성년자에게 술 관련 방송이나 광고가 규제되는 전통 매체와 달리, 유튜브·틱톡 등에선 청소년을 유혹하는 ‘음주 먹방’이 무제한 노출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9일 ‘미디어 음주 장면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발표했다. 2017년 절주 문화 확산을 위해 처음 만든 이 가이드라인은 원래 "삼가야 한다" "신중해야 한다" 등 권고적 수준이었지만, 이번 개정으로 구체화됐다. ‘음주행위를 과도하게 부각·미화하는 콘텐츠는 연령 제한 등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의 접근을 제한하고 경고 문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하지만 이미 늦은 감이 있다. 청소년 음주 경험(최근 30일 이내 1잔 이상 술을 마신 비율)은 2020년 15%에서 지난해 19.5%로 높아졌다. 청소년 전문가들은 숏폼의 악영향에 주목한다. 숏폼 음주 먹방이 청소년에게 중독과 집중력 저하를 일으키는 ‘팝콘 브레인’ 증상을 일으킨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가이드라인’에 머물지 말고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미성년자 보호를 위한 숏폼 플랫폼 규제 강화는 이미 세계적 흐름이다. 유럽연합(EU)은 최근 유튜브와 틱톡에 불법·유해 콘텐츠에 대한 구체적인 어린이 보호 방안 제출을 요구했다. 우리 방송통신위원회도 올해 초 발표한 업무계획에서 영상 플랫폼, OTT 등을 국가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미디어통합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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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 9월 국회에서 관련 토론회가 한 번 열렸을 뿐, 올해 내내 아무 진전이 없다. 현재 관련 부처 소통 없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무총리실이 제각각 관련법을 준비하는 실정이다. 정부는 주관 부처를 정하고 청소년을 숏폼 플랫폼의 부작용에서 보호할 정책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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