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 용어]'서울의 봄'이 조명한 '12·12군사반란'
12·12군사반란(12·12사태)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극장 개봉 닷새 만에 누적 관객 수 200만명에 육박하며 역사적 사건과 배경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2·12군사반란은 1979년 12월12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 사건을 지칭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10·26사건의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가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그를 강제 연행하고 육군지휘부를 장악했다.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과 특전사령관 정병주 등이 신군부에 맞서 저항했지만, 당시 최규하 대통령이 정승화 총장 연행을 사후 허락해 전두환에게 모든 주도권을 내주게 됐다.
군사반란이 성공하자 신군부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등 민주헌정을 중지시키고 군사정권으로 회귀하려 했다. 많은 국민과 정치인이 저항 운동을 펼쳤고,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는 다음날 시작된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신군부는 빠르게 정권을 장악했다. 5월24일 김재규 등 박정희 피살 관련자는 대법원 판결 확정 후 즉결심판으로 처형됐다. 이어 8월엔 최규하 대통령이 신군부의 압력으로 사임했다. 전두환은 대장, 중앙정보부장을 거쳐 1981년 3월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하기에 이르렀고, 노태우 역시 대장을 거쳐 내무부 장관에 오르는 등 군사반란에 가담한 신군부 인사들이 줄줄이 요직을 차지했다.
전두환은 대통령 취임 후 언론 통폐합과 삼청교육 등을 강행하며 강압 통치를 이어갔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 조작 사건이 6월 항쟁을 촉발하자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는 6·29 항복을 했지만 김영삼·김대중의 후보 단일화 실패로 다음 정권은 후계자인 노태우에게 넘어갔다.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임한 1993년 초까지 12·12군사반란은 집권세력에 의해 정당화됐고, 이후 김영삼 문민정부에 들어서야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됐다. 1995년 전두환과 노태우는 군사반란 가담, 뇌물 수수 등으로 기소돼 1997년 징역형과 추징금을 선고받았으나 같은 해 12월22일 특별 사면됐다. 두 사람은 지난 2021년 각각 노환과 지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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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12일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뀐 긴박했던 9시간을 집중 조명한 영화로 12·12군사반란을 모티브로 한 최초의 영화다. 군사반란을 모의하는 보안사령관 '전두광'을 배우 황정민이, 이를 막으려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을 배우 정우성이 맡았다. 외모까지 실존 인물과 흡사하게 꾸며 반란군과 진압군의 긴박했던 대립을 속도감 있게 그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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