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HBM 역사
삼성이 '숫자'에서 밀려
투자 늘리면 역전 가능성
69%VS24%
연초 대비 지난 25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주가 상승률이다.
-3조7000억VS-1조7920억
3분기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 영업이익 전망치와 SK하이닉스 영업이익이다.
삼성전자는 명실상부한 국내 1위 기업이다. 나아가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서 세계 1위다. 2위가 바로 SK하이닉스다. 등수 차이는 불과 1이지만 둘 사이에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숫자로 압도하는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숫자로 압도하는 분야는 기업의 미래가치를 반영한다는 주가 상승률과 차세대에서 첨단으로 바뀌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인 HBM 시장점유율이다. 또 최근 실적에서도 하이닉스가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다. 가끔 단순한 숫자가 화려한 수사(수사)보다 더 설득력이 있는 순간이 있다. 지금이 바로 그렇다. 하이닉스가 삼성전자의 1등 아성에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왜 하이닉스가 실적과 주가에서 선전하고 있을까. 첨단 제품인 HBM 개발과 우량 고객 수주, 선단 공정 등 주도권 싸움에서 SK하이닉스가 삼성보다 앞섰기 때문이다. HBM 반도체는 D램 여러 개를 수직으로 연결해 만든 고성능 제품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기존 제품보다 대폭 높여준다. 주로 인공지능(AI) 데이터를 처리하는 그래픽 처리장치(GPU)에 탑재된다.
26일 SK하이닉스는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HBM 포함 그래픽 D램 매출이 전체 D램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대라고 밝혔다. 3분기 D램 매출이 6조744억원이니 최소 1조2149억원을 HBM을 팔아 번 셈이다. 고부가 제품인 HBM 효과로 SK하이닉스 3분기 D램 실적은 2개 분기 만에 흑자 전환했다. 세계 D램 시장 주도권을 쥐고 있는 3개 기업(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가운데 흑자 전환에 성공한 곳은 SK하이닉스가 유일하다.
HBM 반도체 역사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SK하이닉스는 HBM 반도체를 처음으로 개발했다. 인공지능(AI) 시장의 미래를 보고 과감하게 베팅한 것이다. 당시 HBM 개발에 투자하는 것을 두고 사내에서도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뚝심 있게 HBM 기술력을 높인 결과, 지금과 같은 열매를 맺었다.
제품 개발뿐 아니라 선단 공정, 고객 수주 등에서도 삼성전자, 미국 마이크론 등 라이벌을 앞서나갔다. 2013년 1세대 제품에 이어 현재 엔비디아에 납품 중인 4세대 제품(HBM3)도 2021년 10월에 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여러 개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하는 공정을 가장 먼저 개발한 덕분이다. 작년 6월에는 4세대 제품 개발 7개월 만에 '양산'에 성공했다. 당시 SK하이닉스는 스스로 "퍼스트 무버"라고 했다.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 삼성을 상징하는 단어를 가져다 쓴 것이다. JEDEC(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과의 국제표준 작업도 주도했다. 삼성은 연말에야 4세대 양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5세대(HBM3E) 제품도 SK하이닉스가 지난 8월 가장 먼저 개발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HBM 투자에 SK만큼 역량을 쏟아붓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HBM 반도체는 2023년 지금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전체 대비 출하량 비중이 1%에 불과한 제품이다. 10년 전(2013년)에는 AI 시장이 언제 글로벌 '뉴 노멀(새로운 표준)' 수준으로 성장할지 예측하기 쉽지 않았던 상황이었다.큰 돈을 쏟아 붓기는 어려웠다는 분석이다. 그러다 올 초 마이크로소프트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글로벌 시장을 휩쓸면서 SK의 HBM 베팅 전략이 삼성을 앞섰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 경쟁에서 하이닉스가 대승을 거둔 셈이다.
SK 제품 개발 속도가 삼성, 마이크론보다 빠른 것이 실적에도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우량 고객 엔비디아와의 거래를 먼저 트고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세계 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 점유율 약 90%를 쥐고 있는 기업이다. 엔비디아 같은 고객을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보다 더 빨리 확보했다는 뜻이다. 고객은 반도체 업체 수율(양품 비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등 치명적인 품질 결함이 발생하지 않으면 공급사를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우량 고객 확보 여파는 수치로 나타난다. 트렌드포스 올해 점유율 추정치는 양사 모두 46~49%지만, 작년 말까지 공식적으로 나온 '숫자'를 보면 SK하이닉스가 50%로 삼성전자 40%보다 10%포인트가량 높았다. 신한투자증권이 추정한 내년 점유율 역시 SK하이닉스(48%)가 삼성전자(45%)를 앞선다.
축배를 들기는 이르다. 삼성전자는 상반기 DS 부문이 9조원 가까운 적자를 냈는데도 역대 최대인 13조7800억원을 연구개발(R&D)에 투입했다. 시설투자에도 상반기에 25조3000억원을 쏟아부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투자를 대폭 늘렸고 메모리 반도체 투자액은 예년 수준을 유지했다. 만약 삼성이 HBM 반도체 투자 비중을 늘리면 SK하이닉스가 앞서가는 양상은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시장에서 엔비디아만큼 AI 메모리 반도체를 대량으로 소비해줄 만한 기업이 아직 없다"며 "당분간은 SK하이닉스 우위가 지속되겠지만 삼성전자가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가능성 때문에 어떻게든 납품을 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김평화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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