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세계적인 예술가이자 국내 최초 아방가르드 무용가, 인도에서 구도의 길을 걸은 명상가인 홍신자가 데뷔 50주년을 맞아 에세이를 출간했다. 살아온 날에 비해 살아갈 날이 현저히 적은 지금, 그녀는 충만했던 지난 시간을 반추하며 후세대인 우리에게 자유로움의 가치를 전하고자 한다. "어떻게 하면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감정을 분출하고 자기를 표현하는 법, 성(性)을 온당하게 누리며 사랑하는 법, 욕망을 비우고 홀가분하게 사는 법, 그리고 마침내 죽음과 친해지는 법을 들려준다. 글자 수 926자.
[하루천자]생의 마지막 날까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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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어제보다 자유로워진 나를 느낀다. 눈을 뜨면 육체적으로 불편한 부분과 껄끄러운 부분을 어쩔 수 없이 마주하지만, 나는 전보다 더 가벼운 정신으로 눈을 뜬다. 그리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 만약 미리 선을 그어두고, 거기까지만 하고 휴식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면 그런 정신으로 눈을 뜨지는 못했을 것이다. 늘 이 정도면 되었다, 라는 선을 정해놓고 살지 않았다. 83년을 살았고, 여기까지 왔으니 잘 먹고 건강하게만 가자, 라는 마음보다는 여기까지 왔으니 더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매일 어제보다 오늘에 대해서 생각한다. 눈을 뜨면 보이는 것과 느껴지는 것, 몸속에서 생겨나는 작은 불편까지도. 오늘의 나로서 그것들을 다시 바라보며 다시 느끼는 것이다. 80대는 20대와 다르지만 나는 같은 자세로 눈앞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끝이 없다. 나는 내가 얼마나 더 살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나이를 떠나서 다른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만 가야 할 길이 조금은 더 있다고 믿는다. 죽는 순간까지 나는 내 몸과 정신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선을 정해두지 않았고, 아직 가야 할 길은 멀기에.

83년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몸과 정신으로 받아낸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83세까지 살아보는 일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아직 더 나아가야 할 내일이 있고, 나는 지금 내 삶을 충분히 사랑한다. 눈을 뜨면 내리쬐는 햇빛, 활짝 열려 있는 깊고 넓은 하늘과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는 땅…… 그 외에도 경배할 수밖에 없는 모든 자연과 전보다 쪼그라진 내 뒷모습, 나의 벗은 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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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롭게 태어났으니, 죽을 때도 자유로울 것이다. 삶을 사는 동안 더욱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전히 살고 있다. 이 글은 늘 오늘이라고 불려왔던, 나와 자유를 위한 날들에 대한 이야기다.

-홍신자, <생의 마지막 날까지>, 다산책방, 1만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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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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