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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넷플릭스의 달콤한 제안 거절 '상징적 의미'…난니 모레티 감독 "난 영화의 힘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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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찬란한 내일로' 난니 모레티 감독 인터뷰
영화감독 역할로 직접 출연, 자전적 성격 이야기 펼쳐져
"영화관이 어려운 시대임에도 영화가 주는 힘, 그 매력과 마법을 여전히 믿는 이야기"

데뷔 47년 차, 노장이자 거장이라 불리는 난니 모레티(70) 감독은 이탈리아 영화계에서 여전한 현역이자 문제적 감독이다. 1976년 공산당원이던 그가 68혁명 세대의 분노를 담은 영화 ‘나는 자급자족한다’로 데뷔한 이래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그는 꾸준히 우파 때로는 좌파 동료들까지 대상으로 삼으며 성역 없는, 사회 전반의 부조리를 향해 코믹하면서도 깊이 성찰하는 메시지를 던져왔다.


영화 '찬란한 내일로'에서 제작자로 출연한 배우 마티유 아말릭과 감독이자 주연을 맡은 난니 모레티. [사진제공 = Sacher Film]

영화 '찬란한 내일로'에서 제작자로 출연한 배우 마티유 아말릭과 감독이자 주연을 맡은 난니 모레티. [사진제공 = Sacher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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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의 신작 ‘찬란한 내일로(A Brighter Tomorrow)’가 이번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관객을 만났다. 이탈리아 현지 연극 연출 일정으로 아쉽게 부산을 직접 찾지는 못했지만, 그는 여전한 유머와 상상력. 그 이면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신의 건재를 과시했다. 영화의 위상이 위협받는 지금, 왜 영화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었는지. 또 OTT와 유튜브 등 다양한 영상 콘텐츠가 쏟아지는 현실에서 영화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지 그에게 서면으로 물었다.

그는 자신의 열네 번째 장편인 ‘찬란한 내일로’에서 영화감독 지오바니로 등장한다. 극 중 지오바니 감독은 1956년 이탈리아 공산당(PCI)의 양심을 주제로 한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소비에트 연방이 독립을 꿈꾸는 헝가리를 잔혹하게 탄압했음에도 불구하고 PCI가 여전히 소비에트 연방과의 관계를 끊지 못하는 당시 상황에 대한 감독의 분노는 지금까지 유효한 듯하다. 영화 속 영화를 통해 대체 역사를 제시하고자 하는 지오바니의 고군분투는 아내와의 불화, 제작자의 구속 등으로 갈수록 위기에 내몰린다.


그는 이번 작품을 연출하게 된 배경에 대해 “나는 영화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고, 또 이를 통해 다행히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었다”며 “내가 만든 많은 영화는 굉장히 개인적이었지만, 운 좋게도 보편적이고 또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진 것들이 많았고 이번 영화 역시 그런 작품이 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영화에서 지오바니의 아내이자 영화 제작자 파올라는 오직 영화에만 몰두하는 남편과의 40년 결혼생활을 끝내고 싶어한다. 관계의 ‘컷’ 사인이 간절한 아내는 돈이 되지 않는 남편의 영화 대신 조악한 갱스터 영화 제작으로 돈을 벌어 생계를 꾸려나간다. 눈치 없는 남편은 아내의 영화 현장에 무단 침입해 막 촬영을 앞둔 폭도 처형 장면 촬영을 멈춰 세우고는 이 장면이 과거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살인에 관한 단편만큼이나 폭력적이고 나쁜가에 대해 젊은 감독과 배우들을 상대로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아내는 곧 심리치료사를 만나 남편을 떠날 생각임을 고백한다. 현실의 난니 모레티는 영화 현장만큼이나 인생 또한 모든 것을 통제하길 바라는 영화 제작자 아내가 마주하는 좌절감에 주목한다.

영화 '찬란한 내일로' 스틸.  [사진제공 = Sacher Film]

영화 '찬란한 내일로' 스틸. [사진제공 = Sacher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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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일장 연설 중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 건축가 렌조 피아노와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에게 전화하는 장면에서는 이 남자가 지오바니인가 난니 모레티인가 하는 모호함마저 느끼게 된다. 이내 관객은 이 작품이 그가 지금까지의 작품활동을 결산하는 자전적 이야기인가 생각한다. 하지만 난니 모레티는 “이 작품은 결산이 아닌 강한 믿음에 관한 영화”라고 강조한다. 그는 “영화 상영관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주는 힘, 그것의 매력, 그 마법을 여전히 믿는 이야기”라고 ‘찬란한 내일로’를 정의한다. 그는 이어 “여기서 당연히 내가 말하는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라고 덧붙인다.


그의 부연은 글로벌 OTT가 영화산업에 가져온 큰 변화에 대한 지적으로 풀이된다. 새로운 유통창구로 떠오른 OTT는 판권 거래를 통해 안정된 제작환경을 제시하지만, 창작자와 제작자는 이 과정에서 최대한의 수익 창출 가능성을 잃고 극장 역시 위기를 맞았다.


극 중에서 넷플릭스 임원과 만나는 지오바니의 태도에도 이런 난니 모레티의 태도는 고스란히 녹아있다.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는 그의 행보는 한 인간의 관점으로는 위태롭지만, 영화산업의 상징적 측면에서는 응원하게 되는 작지만 강한 한 걸음이다. 실제 난니 모레티는 혼자서 감독, 제작, 시나리오, 배우, 배급을 겸하는 1인 제작 시스템을 고수하는 한편 1991년부터 로마에 360석 규모의 극장 누오보자케르를 개관해 운영하는 극장주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을 두고 “나는 감독이 아니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그것을 영화로 만드는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그 선언이 여전히 유효한가 묻자 그는 “그렇다. 나는 감독이자 영화관 관장이고 제작사 대표이며 2년간 토리노국제영화제를 운영하는 행정가로 활동하는 한편 여름에는 내 극장에서 젊은 영화인들의 데뷔 신작 영화제를 기획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이 모든 일을 하는 이유는 어떤 미션이나 퀄리티 높은 영화에 대한 의무감이 아닌 그저 내가 하고 싶어서다. 연출가로서 나의 일이 이런 활동을 통해 확대되고 또 완성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영화 '찬란한 내일로'에 출연한 피아니스트 유선희 씨와 난니 모레티 감독. [사진 = 본인 제공]

영화 '찬란한 내일로'에 출연한 피아니스트 유선희 씨와 난니 모레티 감독. [사진 =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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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에는 한국 배우 유선희 씨가 제작자로 출연해 화제가 됐다. 그는 연기 경력이 전혀 없는 피아니스트였는데, 오디션을 통해 작품에 발탁돼 유럽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는 종종 전문적이지 않은 배우들과 함께 일을 했는데 그건 내 시작(나는 자급자족한다)부터 그래온 것”이라고 설명하는 난니 모레티의 발언은 비전문 배우였던 그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전작들을 떠올려보면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는 “운영되는 극장이 있는 한 나는 그 극장들을 위해 영화를 쓰고 연출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영화가 처한 현실은 기실 암울하지만, 그는 여전히 ‘찬란한 내일’을 꿈꾸며 믿음을 거두지 않고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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