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방신전통시장 가보니
전통시장 입지 축소에 상인들 우려
배달 서비스도 한계…소비자 이용↓
"갈수록 편의시설이 많이 생기고 마트가 많이 생기니까 아무래도 전통시장 상인들은 매출에 타격이 있죠.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막막합니다"(서울 강서구 방신전통시장 정육점에서 일하는 송영국씨(33·남))
26일 오전 7시30분 기자가 찾은 서울 강서구 방신전통시장.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이곳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한 상인들이 매대를 채우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떡집 가게에서는 뽀얀 수증기를 배경으로 여자 상인은 참기름을 놓고 갓 지은 떡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있었다. 과일·채소 가게 상인은 트로트 노래에 맞춰 과일을 정리하고 있었으며, 전집에서는 지글지글 산적을 굽는 소리가 들렸다. 채소 장사를 하는 백민호씨(61·남)도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와 트럭 트렁크에 있는 채소 박스를 가게 앞에 내려놓고 있었다. 백씨는 "오늘은 새벽 4시에 나왔다"며 "빨리 나와야 농산물도매시장에서 좋은 물건을 떼올 수 있다"며 멋쩍게 웃었다.
추석을 앞두고 기대에 찬 상인들이었지만, 가슴 한쪽에는 고민거리를 갖고 있었다. 전통시장의 소비 시장에서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신진시장은 반경 1.2㎞ 이내에 있는 롯데마트와 지난해 영업을 중단한 이마트에 영향을 받았다. 백씨는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소상공인들도 타격을 많이 받았다"며 "지금은 없어지긴 했지만 이마트 오픈 이후 영향이 컸다"고 전했다. 기존에 있는 대형마트 말고도 강서구에는 3개의 복합쇼핑몰·아울렛 입점이 예정돼 있다.
신진시장 말고도 전통시장의 입지 축소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전통시장 수는 1401개로 2006년(1610개)에 비해 209개(13.0%) 감소했다. 점포 수도 2006년 22만5725개에서 2020년 20만7145개로 1만8580개(8.2%) 줄었다.
유통산업발전법의 변화 가능성도 상인들에게는 걱정거리 중 하나다. 정부여당은 최근 대형마트 영업 제한시간인 야간이나 의무휴업일에도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가져왔다. 반찬가게에서 일하는 임한범씨(63·남)는 "안 그래도 쿠팡이나 온라인 플랫폼 때문에 타격이 크다"며 "대기업도 중요하지만, 소상공인은 의지할 곳 자체가 없다"고 전했다.
전통시장 배송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전통시장 살리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방신시장은 전통시장 배달서비스 놀러와요 시장(이하 '놀장')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 상인들은 실질적으로 소비자들이 배달서비스를 많이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조상현 방신전통시장 상인회장은 "홍보가 충분하지 않고 홍보 인력도 없는 상황이라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배송비 지원이 될 때는 그나마 조금 나갔지만 지원이 끊기고 나서는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백씨는 "배송비가 들어가면서 값이 오르니 쉽지 않다"며 "무료배송을 자체적으로 시도했지만, 이 또한 부담이 컸다"고 했다.
상인들은 국가 경제에 실핏줄 역할을 하는 전통시장이 살아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씨는 "먹거리들이 많이 형성되면서 시장이 특색을 갖추면 좋겠지만 이런 장사를 시작하려고 해도 그 상인 입장에서는 위험부담이 큰 것 같다"고 했다. 임씨 역시 "이런 상황에서 소상공인들은 스스로 노력해서 잘 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며 "정부 차원에서도 장기적으로 전통시장이 살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전통시장만의 특색을 살리는 방식이나 시설 개선 등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온라인이 대세라고 하더라도 오프라인에 대한 욕구가 있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욕구 충족 면에서 가능성이 더 크다"며 "전통시장은 저렴한 물건에 더해 볼거리나 감성을 추가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정부는 단발성에 그치는 전통시장 지원이 아니라 전통과 감성을 가미하는 환경 정비·개선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진주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요즘 소비자는 편리성을 추구하다 보니 대형마트 수준의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전통시장에 발걸음이 뜸하다"며 "소비자 눈높이에 맞추는 전통시장의 주도적 환경 개선 노력이 필요하지만, 대기업과 달리 재무적인 한계가 있으므로 지자체가 전통시장과 협업하거나 지원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김영원 기자 fore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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