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따고도 일장기 걸리자 한 품고 눈물 흘렸던 손기정
태극기로 정상 오른 서윤복에 "내 조국 다시 찾은 심정"
강제규 감독 "감춰진 역사 다시 돌아보는 일 유의미"
애국심 전면에…마라톤 대표단 둘러싼 갈등 빠진 건 아쉬워

손기정(1912~2002)은 1936년 베를린하계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상식은 비극적이었다. 일장기가 중앙 깃대를 타고 올랐고, 기미가요가 올림픽 스타디움에 울려 퍼졌다. 손기정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결심했다. '두 번 다시는 일장기 아래서 뛰지 않으리라. 그러나 더 많은 조선인에게 이 쓰라림을 알리도록 하리라.'


[슬레이트]손기정의 나무람 외면한 '1947 보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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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선수단 본부는 선수촌 안에서 축하 파티를 열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주인공은 찾아내지 못했다. 손기정은 안중근 의사의 사촌인 안봉근 씨가 거처에서 베푼 환영연에 참석해 있었다. 그는 안방에서 처음으로 태극기를 마주했다. 선명한 색깔로 나뉜 음과 양, 그리고 태극을 감싼 괘. 손기정은 당시를 평생 잊지 못했다.

"온몸에 뜨거운 전류가 흐르는 듯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잃었던 조국, 죽었던 조국의 얼굴을 대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탄압과 감시의 눈을 피해 태극기가 살이 있듯 조선 민족도 살아 있다는 확신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손기정은 1947년 베를린에서의 한을 달랠 수 있었다. 보스턴마라톤대회에 감독으로 참가해 서윤복(1923~2017)의 우승을 견인했다. 우리 민족이 태극기를 달고 이룬 최초의 승리였다. 그는 관중석에서 복받쳐 오르는 감격에 못 이겨 눈물을 흘렸다. "잃었던 조국을 다시 찾고, 잃었던 태극기를 다시 찾고, 잃었던 코리아의 이름을 다시 찾아 만방에 조국의 건재를 알렸다. 11년 전 잃었던 내 조국을 다시 찾은 듯한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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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감독은 일련의 과정을 영화 '1947 보스톤'에 고스란히 담았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승리의 역사가 재조명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손기정은 고(故) 조동표 기자가 쓴 '마라톤은 살아 있다(1995)' 추천사에 다음과 같이 아쉬움을 드러냈다.


"나 말고도 한민족의 우수성을 스포츠를 통해 세계에 자랑한 이들이 여럿 있었건만 그 업적을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예를 들면 나의 후배 서윤복 씨의 1947년도 보스턴마라톤대회 제패라든가 그 3년 뒤의 1950년도 대회 메달 독점(함기용·송길윤·최윤칠) 등은 나의 업적 이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위업이었다. 그러나 시대적 상황 등으로 당시에도, 오늘날에도 정당하게 평가되지 않고 있다."


강 감독은 "우리 역사에는 영광보다 아픔의 시기가 더 많다. 서윤복의 보스턴마라톤대회 우승은 후자일 때 일어난 일이었다"며 "감춰진 역사를 다시 돌아보는 일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뤄낸 쾌거가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서윤복의 노력에 손기정 감독의 뒷받침, 남승룡(1912~2001)의 희생이 더해져 값진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달렸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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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보스톤'은 애국심을 전면에 내건다. 보스턴마라톤대회 조직위원회에서 서윤복(임시완)의 유니폼에 태극기를 달 수 없게 하자 손기정(하정우)이 대회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불참을 선언한다. 보스턴마라톤대회는 아메리카 독립군이 영국군의 공격에 맞서 싸운 1775년 4월 19일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매사추세츠주와 메인주가 '애국자의 날'로 정하고 각종 기념행사를 열었는데, 보스턴체육협회의 윌슨 회장이 1896년 아테네하계올림픽에서 투혼의 질주를 보고 감동해 마라톤을 추가했다.


강 감독은 "당시 마라토너들이 왜 조국을 가슴에 새기고 달렸을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제는 나라 간 경계가 많이 허물어져 국경이나 국가 같은 개념이 많이 사라졌다. 우리 집 아이들에게서도 그런 개념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때 사람들은 정반대였다. 나라에 관한 생각이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 본질은 강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또 다른 이유와 결부된다. 바로 스포츠가 가진 양면성이다. 끊임없이 정치에 오염되고 이용당하지만 때로는 정치적 화합의 장을 열어준다.


겉보기에 서윤복이 일군 영예는 후자다.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동양의 작은 나라를 미국 시민 사회에 깊이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외교관 수백 명을 능가하는 힘을 발휘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파급력이 상당했다. 1952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에 오르는 에이버리 브런디지(1887~1975)는 서윤복을 축하하며 한국의 1948년 런던하계올림픽 참가를 돕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강 감독은 "정치인들이 독립을 위해 목소리를 내어도 외신에 기사 한 줄 나기 힘들었을 때였다. 두 시간을 달려 대한민국을 알렸으니 김구 선생이 '족패천하(足覇天下·발로 세계를 제패)'라는 붓글씨 휘호를 줄 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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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정치와 무관했던 건 아니다. 마라톤 대표단은 보스턴마라톤대회 정상에 오르고도 여비가 바닥나 돌아갈 길이 난감했다. 이승만 박사의 외교 사절로 미국을 방문 중이던 임영신(1899~1977) 씨는 사정을 파악하고 한인 동포들로부터 돈을 거두기 시작했다. 마라톤 대표단을 데리고 뉴욕과 워싱턴은 물론 로스앤젤레스(LA)까지 넘어가 모금 운동을 폈다. 당시 LA 한인사회는 분파와 당쟁으로 혼란이 극에 달했다. 국민회와 동지회, 흥사단으로 파가 갈렸는데 서로 의견을 모으지 못해 선수들을 따로따로 초대해 갔다. 손기정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세 군데 모임에 따로따로 초청돼 가서 하루 세끼 밥 얻어먹기는 편했으나 마음으로는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라를 되찾은 마당에 국민회면 어떻고 동지회면 어떠냐. 또 흥사단이면 어떠냐. 민족의 지도자들을 떠받들기는 마찬가지인데 서로가 존중해 주고 이해하면 그만인 것을.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서로 제 공을 내세워 권세나 누리겠다는 것이지 어디 독립을 위한, 나라를 위한 것인가."


국내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마라톤 대표단이 귀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체육회장이던 여운형(1886~1947)이 괴한의 총에 난사 당해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그와 함께 일본 정부에 조선 독립의 타당성을 역설했던 장덕수(1894~1947)도 그해 종로경찰서 경사 박광옥과 배희범의 저격으로 숨졌다. 1949년에는 김구마저 안두희의 흉탄을 맞고 한 많은 일생을 거두었다. 정치인들은 나라를 위한 마음뿐이라면서도 견해가 다른 파를 설득하기 전에 총부터 갖다 댔다. 겨우 시작된 나라의 정치 풍토를 핏빛으로 물들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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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게도 '1947 보스톤'에 이런 갈등은 조금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태극기마저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는 오늘날 이념 충돌을 돌아볼 여지가 전혀 없다. 그저 태극기를 달고 처음 국제대회에 나선 대표단이 어떤 마음으로 달리고 응원했을지에만 충실하다. 손기정과 서윤복, 남승룡은 분명 그 이상을 바라보고 걱정한 영웅들이었다. 과도 정부와 조선체육회가 서윤복의 우승을 기념해 마련한 환영식에서 한 연설이 증명한다. 생색만 내려 들던 인사들을 향한 나무람이었다.


"우리 서윤복 군이 오늘 우승해서 개선한 것은 서 군 자신의 노력도 노력이려니와 온 국민의 큰 성원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성대한 환영식을 베풀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국으로 원정을 떠날 때는 모두 어디에 가 계셨습니까? 나는 애국자이신 여러 어른보다 우리 서윤복 군이 더 큰 일을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저희가 마음 놓고 운동할 수 있도록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 주십시오(손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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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떠날 때는 쓸쓸하게 떠났는데 이기고 돌아오니 이렇게 성대한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11년 전 제가 손기정 군과 베를린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피상적인 환영보다는 우리 체육계의 젊은이들을 위해 정신적·물질적 지원을 해주셨으면 합니다(남승룡)."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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