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실질적 가장이었던 母
전쟁터에 아들 보낼 때도 의연
강인한 母가 있어 성웅도 가능
성웅 이순신. 조선, 아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위대한 영웅이다. 그런데 이처럼 훌륭한 인물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기둥으로 있어 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어머니 초계 변씨다.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난 변씨는 덕수 이씨 가문의 이정과 결혼해서 네 아들을 두었고 그중 셋째가 이순신이었다. 셋째 아들은 동네에서 유명한 말썽꾸러기였다.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유성룡이 징비록에 기록한 바에 따르면, 초계 변씨의 셋째 아들은 공부는 안 하고 전쟁놀이를 일삼았다. 좁은 길목에 담을 쌓아 진지를 만들고, 동네 어른들이 꾸중하면 활로 눈을 겨누며 위협하기도 했다. 부모로서는 참으로 걱정스러운 자식이었을 것이다. 글공부하고 과거에 급제해서 입신양명하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에 싸움질이나 하고 다녔으니까.
집안 형편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변씨의 시아버지는 물론 남편도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다. 따라서 실질적인 벌이와 살림은 변씨가 담당했을 것이다. 원래 글공부에 파묻힌 남편 대신, 농사짓고 부업하고 장사하며 가계를 꾸려나간 게 조선시대의 여인들이었다. 변씨의 삶은 참으로 고단했을 것이다.
게다가 비극이 끊이지 않았다. 큰아들과 둘째 아들은 어린 손주들을 남기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셋째 아들은 무과시험을 보다가 말에서 떨어져서 다치기도 했지만 다행히 급제했다. 그렇지만 급제한 이후로도 셋째 아들은 함경도, 전라도 등에서 지방 근무를 하느라 집에 들를 짬이 없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두 달 뒤에나 아들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가계를 꾸리고 아버지를 잃은 손주들을 키우는 것은 오롯이 변씨의 일이었다.
1592년 전쟁이 벌어졌다. 서울이 불타고 왜적들이 국토를 유린하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렇게 위험한 전쟁터를 향해 떠나는 셋째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변씨는 "나라의 치욕을 씻기 전에는 돌아오지 마라"고 의연하게 말하면서 조금도 아쉬워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강해질 수 있었을까? 그런 변씨를 어머니로 두었기에, 징비록의 말썽꾸러기는 성웅 이순신이 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영웅의 어머니도 결국 사람이었다. 초계 변씨는 이미 80이 넘은 나이였으며, 위험하고 고된 길을 가는 아들을 걱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전쟁이 벌어지고 몇 년이나 변씨는 아들과 만나지 못하고 그저 ‘평안하다’는 소식만 주고받았다. 그러다 셋째 아들이 한밤중에 노를 저어 불쑥 찾아오자 변씨는 깜짝 놀라 맞이한 뒤 날이 밝도록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그리고 다시금 한산도로 떠나가는 아들과 헤어질 때는 말이야 어떻게 하든 서운한 기색을 미처 숨기지 못했다. 그게 어머니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이승에서의 마지막이었다.
1597년 이순신은 주변의 모함과 시기 때문에 파직당하고 죽을 고비를 맞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변씨는 배를 타고 한양으로 떠났다. 이미 쇠약한 몸에 고되고 위험한 뱃길이었지만, 변씨는 망설이지 않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들을 다시 보지 못하고 배 위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순신은 어머니의 주검 앞에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차라리 죽고 싶다고 괴로워했다. 어머니는 가고 없어도 이순신은 여전히 살았고 해야 할 일을 했다. 그의 어머니가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여전히 살았던 것처럼. 슬픔과 걱정을 눌러 가라앉히고 해야 할 일을 했던 것처럼. 초계 변씨의 아들은 나라의 치욕을 씻기 위해 명량을 향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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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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