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만하천 운동본부 출범]숨쉬듯, 밥먹듯 '손글씨' 쓰다보면…뇌 저절로 건강해져요
'베껴 쓰기' 필사의 매력
좋아하는 소설·시 문구 등 다양
가장 쉽게 인지능력 지키는 방법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와 같은 디지털로 넘어왔지만, 아날로그 방식인 손글씨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 종이와 펜만 있다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뇌 건강을 증진하는 강력한 운동을 할 수 있다. 대표적 방법인 필사(筆寫)는 말 그대로 글자를 ‘베껴 쓴다’는 뜻이다. 필사의 대상은 좋아하는 소설이나 시의 문구, 유명인들의 연설문, 오래된 고서, 학술적인 내용을 다룬 논문 등 제한이 없다. 다만 자판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손으로 펜을 쥐고 글씨를 정성스럽게 써 내려가야 한다.
필사 효과는 크다. 글씨를 쓰면서 배우면 읽는 속도가 빠르고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정보를 얻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 고전학자인 박수밀 한양대 연구교수는 "머리가 좋아지고 생각하는 힘을 키우며 차분한 정서를 가지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손글씨 안에는 따뜻한 감성과 풍성한 학습 효과가 담겨 있다"면서 "그냥 손으로 옮겨 쓸 때보다 입으로 소리 내면서 쓰면 더더욱 효과가 좋다"고 말한다.
이동영 작가는 카카오가 운영하는 콘텐츠 플랫폼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잘 알려진 에세이스트이자 10년차 글쓰기 전문강사다. 그는 독서 모임을 통해 만난 지인들과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누면서 좋은 글을 공유하자는 취지로 필사 모임을 만들었다. 생각지도 않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면서 입소문이 나 이곳저곳에서 새로운 모임을 기획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작년에는 한글과컴퓨터에서 한컴타자연습의 새 버전을 만든다며 자문을 부탁하기도 했다. 업그레이드된 ‘한컴타자연습 2023’ 프로그램엔 기존처럼 주어진 단어나 문장을 빠르고 정확하게 치는 게임 형태의 타자 연습뿐 아니라 본인이 좋아하는 글이나 소설을 입력하는 필사 방식이 포함됐다.
글을 쓰고 싶지만 막상 펜을 들기 어렵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 작가는 "우선 매일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분량만큼의 글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 써보라"고 조언했다. 하루 20~30분 일상 속에서 일정한 루틴에 따라 글쓰기를 습관화하다 보면 "숨 쉬듯, 밥 먹듯, 글쓰기도 그렇게 쉽게 되는 순간이 온다"고 했다.
구본진 더킴로펌 대표변호사도 일찍이 필사의 매력을 깨달았다. 법조계 경력만 30여년에 달하는 구 변호사는 국내 1호 필적학자로 유명하다. 강력부 검사 출신인 그는 흉악범들의 조서를 받아 보다가 그들의 글씨체에 공통점이 있다는 걸 우연히 발견했고, 관련 연구자료와 해외 도서를 구해 필적학 연구를 시작했다. 필적학은 글씨를 세밀하게 분석하는 연구 방법으로, 글자의 모양이나 크기, 기울기, 간격 등을 세밀하게 분석해 개인의 성향이나 내면을 파악하는 데 쓰인다. 구 변호사는 필적을 통해 사람의 내면이 드러난다고 이야기한다. 글씨의 간격이나 방향, 자음과 모음의 모양 등으로 한 사람의 성향이나 결단력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구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가 추천하는 방법은 하루에 20분 정도 꾸준히 필사하는 것이다. 하루에 1000자를 쓰면 20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걸리는데, 이렇게 6주에서 8주 정도 연습한다면 뇌 건강을 키울 수 있다. 필사할 때 ‘롤 모델’을 정해두고 베껴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구 변호사는 "바람직한 글씨체나 내가 바라는 인간상을 나타내는 글씨체를 연습한다면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부연했다.
'펜 덕후'들에게 유명한 박종진 만년필연구소 소장은 글을 쓸 때 만년필만큼 재미난 필기구가 없다고 말한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펜촉의 날카롭고도 부드러운 터치감, 한 자 한 자 쓸 때마다 나는 ‘스윽 쓱싹’ 소리, 잉크의 향과 발색, 종이의 질감까지 매번 그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의 일과도 매일 새벽 필사로 시작한다. 주로 전날 읽은 책 중 인상 깊었던 구절을 노트 위에 만년필로 정성 들여 적는다. 일기를 쓰거나 나중에 글로 쓰고 싶은 생각을 메모 형식으로 적어두기도 한다. 박 소장은 "이른 아침, 만년필을 들고 글을 쓰다 보면 머릿속 이런저런 생각들이 차분히 정리된다"며 "보통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글 쓰는 훈련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게 자신의 인지능력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병규 경남도 경제부지사의 하루는 아침 6시부터 시작된다. 시 한 편과 그날의 성경 말씀을 필사해 지인들에게 보낸다. 책장에 꽂힌 시집이나 인터넷에서 찾은 시, 계절에 따라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시 등을 그날그날 감정에 따라 골라 쓴다. 봄꽃이 만발하는 요즘은 목련, 개나리, 매화, 벚꽃 등에 대한 시를 옮겨쓴다. 오전 6시 30분부터 오전 7시까지 30분간 유튜브에 나오는 스트레칭 동영상을 보며 스트레칭과 근육운동을 한다. 오전 8시 10분경에 출근해서는 각종 보고와 회의, 미팅은 물론이고 지역 행사, 간담회, 현장방문, 중앙정부 및 국회와의 업무협의 등을 거쳐야 하루가 끝난다. 가끔 녹초가 되는 일도 있지만 매일 아침의 루틴이 바뀐 적은 없다. 오히려 새로운 루틴, 필사 습관을 몸에 익혔다.
김 부지사의 필사 습관은 2021년 시작됐다. 중학교 동창 중 한 명이 단체대화방에 좋은 습관 만들기를 하자고 제안하고부터다. 그날부터 매일 시 한 편과 하루 만 보를 걷기로 했다. 원래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못 하던 성격이었다. 그런데 매일 아침 한 자 한 자 눌러 쓰자 집중력이 올라가고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기획재정부에서 30년 바쁘게 살면서 감성을 키울 기회가 없었는데 필사 덕에 시적 감수성도 쌓이고 있다"면서 "나중엔 자작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100조 날리게 생겼는데…"삼성 파업은 역대급 특수...
아시아경제는 ‘하루만보 하루천자’ 뉴스레터를 통해 필사하기 좋은 문구를 발췌해 독자들에게 매일 전하고 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