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성범죄 가해자의 얼굴을 보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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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면을 벗어주세요. 이분은 바로!” MBC ‘복면가왕’은 출연자 정보를 감추는 노래경연 프로그램이다. 덕분에 시청자는 노래라는 본질에 집중한다. 가면을 벗기면 초점은 출연자의 직업과 외모로 이동한다.


최근 ‘부산 돌려차기’ 사건으로 폭발한 사회 분노가 가해자의 얼굴로 향하고 있다. 이 사건은 수사기관이 ‘피의자 신상공개’ 대상 범죄인 강간 혐의를 적용하지 않고 기소해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피의자 신상은 기소 전 성범죄, 특정강력범죄 사건에 한해 공개된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2일 “여성에 대한 강력범죄 가해자의 신상공개 확대 방안을 추진하라”고 지시했고, 법무부가 검토에 나섰다.

문제는 가해자의 외모 등 개별적 특성이 사회적 관심을 빨아들일 수 있어도, 성범죄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0년 신상공개 제도 실시 후 적용 범죄의 발생 건수는 오히려 늘었다. 미국에선 ‘성범죄자의 갱생 의지를 꺾어 재범률을 높인다’는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처벌과 촘촘한 관리가 근본적인 해법이다.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선입견으로 피해자의 진술을 의심하지 않아야 2차가해를 차단하고 가해자에게 엄중한 형이 선고된다. 지금도 재판에서 유죄 판결과 함께 공개명령을 내리면 가해자 신상을 ‘성범죄자 알림이’ 시스템으로 공개하는 제도가 있다.

정부는 가해자 관리·감독시스템을 정비해 피해자가 안전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스토킹하던 직장 동료를 일터에서 살해한 ‘신당역 사건’ 가해자에게 검사는 “형사사법 시스템을 믿고 성실히 살아가는 국민에게 언제든 같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줬다”고 지적했다. n번방 성착취물 유포, 버닝썬 사건 등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도 일상에서 예기치 못한 범죄에 노출됐다. 관리·감독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해자가 전자발찌를 끊고 재범하는 사건이 반복되는 것도 시민들의 불안감을 키운다.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는 “(성범죄) 증거가 뚜렷하게 안 나왔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며 수사기관의 심기를 건드릴까 우려됐다고 밝혔다. 가해자의 보복 다짐 소식엔 “제대로 지켜주지 않으면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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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관리의 책임 주체다. 식별도 어려운 사진으로 범죄를 막는 것은 시민의 역할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2003년 다수의견에서 “신상공개는 대상자를 대중에 대한 전시에 이용해 단순히 범죄퇴치 수단으로 취급하는 인상이 짙다”고 지적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가면을 벗기는 일이 반복되는 성범죄의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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