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약속한 책임총리
가장 명료성 떨어지는 공약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vs ‘방탄·의전·얼굴·대독’
둘 다 국무총리를 수식하는 말이다. 전자는 ‘한 사람의 아래, 만 사람의 위’라는 뜻이다. 조선 영의정을 일컫는 표현이다. 후자는 요즘 쓰는 단어다. 국무총리에게 국정 운영의 실패를 따져 물을 때 따라붙는다.
“기자님이 생각하는 책임총리는 뭡니까.”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한덕수 총리 취임 1주년 기사를 취재하면서다. 계륵이라느니, 식물이라는 말은 닳고 닳은 공격이라고 했다. 국무위원 인사권과 해임권을 쓰지 않더라도, 내각 통할과 정책 조정에 소임을 다하면 책임총리가 아니냐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얘기다. 책임총리는 법적 개념이 아니고 정치적 용어니까.
‘단군 이래 최대 실세 총리’로 불렸던 이해찬 전 총리는 어땠나. 힘이 세긴 했다. 차관 인사권을 총리가 쥐고 있었다. 법정 국무회의도 주재했다. 예산 조달을 놓고 부처의 반대가 있으면 해임건의권을 쓰겠다고 엄포를 놔 뜻을 관철시켰다. 하지만 이 체제는 오래가진 못했다. 후임인 한명숙 총리 당시 국무회의 주재권은 회수됐다. 이후 총리들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실무·관리형 밖에 없었다.
총리에게 부여된 주권 위임의 수준이 어디까지인가. 우리는 이 문제를 공론장에 제대로 올려 본 적이 없다. 총리는 의회 동의와 대통령 신임에 기초하지만, 대통령의 해임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다. 총리는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통치 권한을 위임받은 존재, 중개인, 대리인, 수탁자다. 하지만 직선제로 뽑힌 대통령에 절대 앞설 수 없다. 그 힘을 분산시킬 수단도 없다. 법적으로 총리령을 늘리고, 장·차관 인사권을 주고, 임기를 확정하지 않는 이상 반짝권력을 가진다 한들 비영속적이고 불안정하다.
결국 초점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왜 지난 1년 동안 책임총리를 안했냐’는 것이 아니다. ‘왜 개헌 없이는 어차피 안될 걸 알면서 책임총리를 매 정권 마다 헛구호로 내놓냐’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38쪽, 다섯번째줄에 ‘책임총리’가 있다. 헌법주의자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책임총리의 정의는 무엇인가. 대선 기간 제왕적 권력을 분산할 것처럼 ‘책임총리’란 모호한 언어를 이용하진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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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민주주의는 ‘공약으로 속박하는 구속적 위임’으로 이뤄진다. 대통령은 공약을 속박이자 구속으로 생각해야 한다. 책임총리는 현실성은 물론 합의된 정의조차 없어 명료성이 가장 떨어지는 공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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