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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정담]"몸·마음·직장에서도 밸런스가 중요…삶은 균형점을 찾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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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한은생활 마침표 앞둔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

[만보정담]"몸·마음·직장에서도 밸런스가 중요…삶은 균형점을 찾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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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에는 흐느적거리고, 지나가기엔 너무 두터운 장벽인 '물'을 뚫고 나가려면 몸의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합니다."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는 자타공인 수영 마니아다. 1991년 한국은행 입행 후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숱한 어려움을 거쳐 30여년의 한은 생활을 지탱하게 해준 원동력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수영이다. 지난달 14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덕수궁 옆 돌담길을 함께 거닐면서 건강의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 부총재는 한치의 고민없이 '수영'이라는 답을 내놨다. 멀리서 봐도 180cm에 달하는 큰 키에 다부진 몸매가 눈에 띄는 이 부총재가 수영 예찬론을 이어갔다. "수영이 단순한 운동으로 보이지만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그는 "비중이 높은 물을 뚫고 가려면 몸의 저항을 최대한 줄이고 추진력을 높이면서 스트림라인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벚꽃이 지고 연둣빛 잎사귀가 빈틈을 채운 4월 중순, 봄비가 갓 개인 정동길 돌감길에서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와 만나 함께 걸었다. "실향민 출신이었던 아버지가 고향을 그리며 화초를 키우는 것을 좋아해 집에 온실정원까지 있었는데 늘 물주는 것은 제 몫이었다"는 이 부총재는 "꽃들이 고개를 드는 봄이 반갑다"며 환하게 웃었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벚꽃이 지고 연둣빛 잎사귀가 빈틈을 채운 4월 중순, 봄비가 갓 개인 정동길 돌감길에서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와 만나 함께 걸었다. "실향민 출신이었던 아버지가 고향을 그리며 화초를 키우는 것을 좋아해 집에 온실정원까지 있었는데 늘 물주는 것은 제 몫이었다"는 이 부총재는 "꽃들이 고개를 드는 봄이 반갑다"며 환하게 웃었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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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도 새벽수영을 마치고 출근했다는 이 부총재는 "한때 수영에 미쳤었다"고 웃었다. 이 부총재가 새벽수영을 시작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시절이었다. 당시 금융시장국 차장이었던 그는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앞두고 자료를 준비하느라 자정 넘는 시간까지 야근하는 일이 잦았다. 밤 12시를 꼬박 넘긴 시간에 퇴근한 그는 한시간 가량 걸리는 집에 도착해 3시간 정도만 눈을 붙인 뒤 새벽 5시 일어나 수영장으로 향했다. 스트레스가 많고 힘든 업무 속에서 수영을 매일 즐기다보니 수영이 생활의 일부가 됐다. 이 부총재는 "몸의 밸런스 유지에 굉장히 좋고, 유연성을 기르는 데 탁월한 운동이 수영"이라며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한때 한은 생활이 힘들어 그만둘까 고민도 잠시 했지만 그를 다잡아 준 것도 역시 수영이었다. "몸·마음 뿐만 아니라 직장·인간관계에서도 밸런스가 중요하다"는 이 부총재는 수영을 통해 삶의 균형점을 찾는 방법을 습득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수영에 얽힌 직원들과의 추억도 털어놨다. 국제국 팀장 시절 한은 내 수영동아리 '즐거운 수영' 초대 회장을 맡았던 이 부총재는 잠실대교 남단에서 한강을 왕복하는 '한강크로스스위밍챌리지'에 동호회 회원 6명과 도전했다. 그런데 그와 짝을 지어 출전했던 조사역 여직원 한명이 한강을 건너던 중 다리에 쥐가 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 처했다. 다급했던 이 부총재는 조사역의 목덜미를 잡고 구조요원에 인계했는데, 이 여직원이 한참이 지나도 도착지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안절부절하던 이 부총재 눈에 뒤늦게 반가운 조사역의 모습이 보였다. 다리에 쥐가 난 상황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줄을 잡고 완주한 것이다. 이 부총재는 "당시 위급한 상황이었는데 한은 여직원의 패기와 용기를 다시 한번 느꼈다"고 전했다.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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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대표 국제통…눈 뜨자마자 환율 체크

이 부총재는 국제국과 금융시장국 등 정책부서를 두루 거쳤고, 대외홍보를 총괄하는 공보관 등을 역임했다. 국제 경제·금융에 대한 이해가 깊어 한은의 대표적인 '국제통'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부총재는 "IMF 상임이사실 파견근무를 통해 국제금융에 눈뜨게 됐고 이를 계기로 국제국으로 전향해 외환시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됐다"며 "아침에 일어나면 환율을 보는 것을 시작으로 트위터에 쏟아지는 정제되지 않은 정보까지 끊임없이 계속 국제상황을 살피는 게 습관"이라고 말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340원을 돌파하면서 고공행진하는 가운데 올해 들어서 환율은 지난해와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 내다봤다. 이 부총재는 "지난해에는 미국의 가파른 통화긴축으로 미 달러화가 매우 빠른 강세를 보였고 그 흐름에 원화도 빠른 약세를 보였다"면서 "그러나 지난해 11월 이후 미 달러화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상 속도조절로 약세를 보이고 있고, 원화도 기본적으로는 그 흐름을 타는 가운데 무역수지 흐름, 주요국 금융불안 우려 등을 반영해 등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작년과는 다르게 미 달러의 약세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며 "시장에서는 점차 하락세를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3일(현지시간)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미국의 정책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되면서 더욱 벌어지는 한미 금리차 우려에 대해 이 부총재는 "환율 흐름에 정책금리차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정책금리차와 환율의 관계는 일대일의 기계적 함수관계가 아니다"며 "환율은 결국 두 나라간 펀더멘털(기초여건) 차이를 반영하기 때문에 금리차이 자체보다는 각각의 정책결정이 물가와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더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미 긴축에 따른 여파로 환율이 일시적으로 변동할 수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점차 하향안정화 추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다.


한은·정부 각각 역할 기초해 유기적 협력 필요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4개월 만에 3%대로 내려오면서 둔화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근원물가는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가운데 이 부총재는 "고물가는 반드시 잡아야 하고 그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물가 상승이 일회성 공급 충격에 의한 것이라면 1년 후 제자리에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한은이 대응할 필요가 없지만, 이번 물가 충격은 코로나19 과정서 형성된 상당한 규모의 수요 압력이 그 기저에 있기 때문에 이를 적정수준으로 낮춰야 물가가 다시 안정적 기조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급격한 금리인상은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최근에는 그 영향을 지켜보면서 추가 인상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올해 한은이 전망한 한국 경제 성장률이 기존 전망치 1.6%를 소폭 하회할 것으로 예상, 물가와 경기 사이 중앙은행의 고민이 클 것이란 우려에 "성장이 떨어지는 것이 두려워 계속 부양에 나서면 물가를 못 잡는다"고 일축했다. "경기가 둔화되지 않고 어떻게 물가를 잡나"고 반문한 그는 "물가를 잡은 뒤 그 위에서 성장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를 책임지는 중앙은행과 성장을 우선하는 정부간 적절한 긴장관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한은은 물가안정, 금융안정을 책무로 갖는 중요한 국가기관"이라며 "정부와 구체적 목적과 정책수단은 다르지만 결국 국민경제의 안정과 발전을 도모하는 점에서 그 길이 다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각각의 역할에 기초해 유기적으로 협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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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한은 본부 재입주…변화의 상징

정동길 벚꽃이 진 틈을 연둣빛 잎사귀가 채우는 시기, 올해 봄은 이 부총재에게 더욱 각별하다. 한은이 약 6년간 진행된 본부 건물 신축·리모델링 공사를 마무리하고 새 건물에 다시 입주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한은은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은 본부에서 준공 기념식을 가졌다. 세종대로 삼성본관의 셋방살이를 마치고 다시 본부로 입주하면서 한은 내부에서도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꿈틀대고 있다. 이 부총재는 "무엇보다 내 고향에 다시 온 것 같다"라며 "기존 업무 공간 말고 외연을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건물 재입주 자체가 변화의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깔끔해진 내부 환경은 물론 회의장소 등 한은 직원들이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물리적으로 확보함으로써 변화의 장이 마련됐다는 설명이다.


이 부총재는 "새 건물은 한은이 지난 2020년 창립 70주년을 맞아 수립했던 중장기 발전전략 'BOK2030'을 실행하는 핵심 공간으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수평적 조직 문화를 확산해 역동성을 끌어올리고 직원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BOK2030 수립을 주도한 이 부총재는 처음 이 전략을 발표했을 때만 하더라도 조직 내부에는 두려움과 의구심이 가득했다고 토로했다.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한은 문화를 바꾸기 위해 과거에도 여러차례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상처와 두려움만 남겼기에 변화를 추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같은 분위기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 부총재는 "최근 변화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이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 변화의 구심점은 이창용 한은 총재다. 지난해 4월 아시아개발은행(ADB)·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이 총재가 부임하고 강한 추동력을 얻으면서 조직 내부에서도 변화의 관성이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약 6년간 진행된 건물 신축·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은 본부

약 6년간 진행된 건물 신축·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은 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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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총재는 "큰 구조물을 돌리려면 처음에는 많은 동력을 필요로 한다"면서 "자동차도 처음 움직일 때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지만, 이후에는 액셀을 조금만 밟으면 되듯 한은 조직도 저항을 이겨내기 위한 가속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 총재가 방향키를 잡고 액셀을 누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변화를 시도하다 보면 때로 실패하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앞으로 3년간 뒤로 갈 것 같지 않다는 것"이라면서 "지난 4년간 변화와 혁신을 추진했던 노력과 이 총재의 리더십이 결합하면서 변화에 대한 믿음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BOK2030의 핵심은 '조사연구의 질적 제고'인데 최근 보고서 양식을 개조식에서 서술식으로 바꿔 전달력을 높이고, 수평적인 리뷰 절차를 대폭 강화했다. 팀원이 보고서를 작성하면 팀장, 국장을 거치는 단순화된 보고체계에서 벗어나 관련된 조직이나 다른 팀, 심지어 금융감독원 등 외부 기관도 보고서를 리뷰하고 의견을 작성할 수 있도록 중간 토론절차를 마련했다. 이 보고서가 향후 어떻게 활용되는지 등도 공개한다. 올해 상반기에는 국·부·팀제를 도입, 총재·부총재와 각 직책별 권한을 연쇄적으로 하부위임해 의사결정의 신속성을 높이고 부장 등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강화했다. 이 부총재는 "50대 부장이 한은의 중추인데 인사적체가 심하고 위 공간이 없다 보니 활용을 못한 측면이 컸다"면서 "숨어있는 인력들을 제대로 활용하자는 측면에서 국·부·팀제를 실행중이며 지금은 평가제도를 정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은은 인공지능(AI) 도입을 통한 디지털 혁신에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챗GPT가 각광을 받고 있는 만큼 이를 내부 업무 효율의 보조수단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오는 8월 임기 만료를 세달여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 부총재는 한은 직원들에게 "한은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져볼 것을 주문했다. "입행 당시 여러 직장 중 한은을 택했던 이유는 사회 참여에 대한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라는 이 부총재는 "결국 중앙은행의 역할은 무엇이고, 우리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한은에 몸담으면서 지속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가 지난달 14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덕수궁 옆 돌담길을 기자와 함께 거닐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정동길은 옛 가정법원이 있던 자리라 이혼 재판중인 부부들이 많이 가서 '이 길을 같이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에 아내와는 한번도 함께 걷지 않았다고 이 부총재는 너스레를 떨었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가 지난달 14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덕수궁 옆 돌담길을 기자와 함께 거닐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정동길은 옛 가정법원이 있던 자리라 이혼 재판중인 부부들이 많이 가서 '이 길을 같이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에 아내와는 한번도 함께 걷지 않았다고 이 부총재는 너스레를 떨었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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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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