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프루스트의 '튈르리 공원'
오늘 아침 튈르리 공원의 태양은 잠이 덜 깬 듯 돌계단 위를 한 칸씩 미끄러지며 내려가고 있었다. 스쳐지나가는 태양의 그림자는 선잠에 빠진 금발 청년을 금방이라도 깨울 것만 같았다. 오래 된 궁전을 배경으로 어린 새싹들이 푸르러지고 있다. 무엇엔가 홀린 바람의 숨결은 과거의 냄새에 라일락의 신선한 향기를 섞는다. 미친 여자의 갑작스런 등장처럼 흔히 우리를 겁주던 석상들은 이곳 소사나무 아치 아래에 꿈을 꾸듯 서있다. 녹음 속에서 흰 빛으로 눈부신 그 모습이 마치 현자들 같구나. 파란 하늘이 내려앉은 수반은 마치 사람의 시선(視線)인양 빛난다.
강가의 테라스 너머로 센 강 저편 케 도르세(프랑스 외무성)의 고색창연한 동네에서 과거로 돌아간 듯 근위병 하나가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제라늄 화분들 위로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침범하고 있다. 태양 아래 타오르는 지치꽃은 자신의 향기를 불태운다. 루브르 궁전 앞의 있는 접시꽃들은 경쾌한 돛대처럼, 기품 있는 기둥처럼, 낯을 붉히는 아가씨처럼 한껏 목을 빼고 있다. 무지개 빛깔로 퍼져가는 분수 물줄기는 사랑에 목 타듯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테라스의 끝에는 제 자리에서 질주하며, 흥겹게 나팔을 불어 대는 기사(騎士)의 석상이 봄날의 이 모든 열정을 구현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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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것만 같다. 더 이상 창공의 빛으로 빛나지 않는 수반들은 시선 없는 텅 빈 두 눈처럼, 아니면 눈물로 가득 찬 단지 같아 보일뿐. 가벼운 바람에도 후려친 듯 흔들리는 분수의 물줄기. 하늘을 향해 이제는 웃음거리가 된 찬가를 서둘러 쏘아 올리는 모습이 엉뚱하기만 하다. 더는 의미 없어진 라일락꽃의 달콤한 향기가 한없는 슬픔이 된다. 그리고 저쪽에선 대리석으로 된 두 발로 맹렬히 박차를 가하며, 자기가 탄 말의 움직이지 않는 질주를 재촉하고 있는 기사가 시커먼 하늘 위로 아무런 의식 없이 계속 나팔을 불어대누나.
-마르셀 프루스트,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 이건수 옮김, 민음사,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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