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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병과 싸우는 0.1%]②"11억짜리 치료제 비급여…건보가 유일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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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해 희귀질환 판정을 받는 환자는 전체 인구의 0.1%인 5만여명이다. 조기진단이 어려워 대부분 성인이 돼서야 희귀질환 환자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치료제 역시 고가에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희귀질환자와 그 가족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들이 처한 현실과 진단·치료를 위한 대책을 찾아본다.


"치료제는 개발됐는데 약값이 10억원이 넘는다고요? 절대 맞을 수 없겠네요."

부산에 사는 30대 김모씨는 서서히 눈이 어두워져가는 희귀질환인 망막색소변성증 환자다. 어릴 때부터 날이 어두워지면 유독 남들보다 앞을 볼 수 없었다. 사람은 원래 그런 줄 알았다. 그러다 20살이 돼 받은 병역 신체검사에서 눈 문제로 면제 판정을 받았고 유전성 망막 질환 진단을 받았다. 병원이 "별도의 치료제가 없다"고 해 지금까지 눈에 좋다는 비타민A 등을 복용만 하고 있다.


치료제 이미지 [이미지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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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막질환 환자에 치료제 희소식…비급여 약값 11억원에 억장 무너져

언제 눈이 실명될지 모르는 김씨에게도 희망이 생겼다. 유전성 망막질환의 발생원인 중 하나인 ‘RPE65 돌변변이’ 유전자를 단 1회 투여로 고쳐주는 ‘럭스터나’(노바티스)가 2021년 9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허가를 받으면서다. 다만 제약사 공급가가 85만달러(약 11억3000억원)에 이르기 때문에 건강보험 급여 등재가 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인 상황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급여화의 첫 관문인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를 지난 2일 열고 럭스터나에 대해 논의를 진행했지만 제약사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비급여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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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관계자는 "럭스터나는 워낙에 고가 치료제인 만큼 위원회가 제시한 사후관리 기준(치료제 효과성이 어느 정도인지 나타낸 것)이 제약사의 기준과 차이가 났다"며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최종 비급여 결정이 났다"고 밝혔다. 김씨는 "치료제 개발이 되는 날만을 가슴에 안고 살아왔는데 비급여 결정이 나서 절망스러웠다"며 "급여화만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말했다.


희귀병 환자들은 어렵게 희귀질환 진단을 받아도 "고난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 특정 희귀질환을 앓는 환자들의 수가 극소수인 데다 질환을 잘 아는 의료진들도 드문 만큼 치료제 개발 속도는 더디다. 기다리던 치료제가 개발됐더라도 고가인 탓에 건강보험 등재가 되지 않으면 환자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가 2011~2020년 10년간 희귀질환 치료제 허가 및 급여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 기간 총 127개의 희귀잘환이 허가될 때 건강보험 급여 품목 수는 71개에 그쳤다.

"급여화됐는데 이번엔 투여가 안 돼"

치료제가 급여에 등재되더라도 난관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척수성 근위축증(SMA) 치료제 ‘졸겐스마’(노바티스)는 지난해, ‘스핀라자’(바이오젠)는 2019년 건강보험 급여화가 됐다. 제약사 공급가가 각각 약 20억원, 1억원에 이르는 치료제를 환자들이 써볼 수 있게 됐다. 졸겐스마는 생후 12개월 이내 영아에게만 급여가 적용돼 우모씨(51)는 스핀라자를 맞아야 한다. 그런데 오랜 기간 질환을 앓은 우씨는 척추가 굽어 있어 주사기로 척수강을 제대로 찌를 수 없다. 우씨는 지난해 스핀라자를 투입하기 위해 병원 입원을 했지만 의료진이 척수강을 찾지 못해 몸에 주사기를 열댓 번 찌른 일도 있었다. 우씨는 "4개월에 1번씩 투입할 자신이 없었다"며 "이후 주사기에 대한 극심한 트라우마를 앓고 치료 중단을 선언했다"고 말했다.


우씨는 대신 경구용 치료제인 ‘에브리스디’(로슈)를 택했다. 11일을 주기로 1통을 써야 하는데 문제는 비급여여서 약값이 100만원에 이른다. 우씨는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측에서 일부 SMA 환자를 대상으로 에브리스디를 무상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에 선정돼 지금은 괜찮지만 나중에 결국 환자 부담으로 약값을 부담해야 할 날이 오기 때문에 걱정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경구용 치료제이지만 섭취해보니 병의 진행 속도도 훨씬 더뎌지는 게 느껴질 만큼 효과가 좋다”고 덧붙였다. 심평원은 에브리스디를 약평위 단계에 올릴지 말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척수강을 제대로 찌를 수 없어 '스핀라자'를 투입하기 어려웠다던 우씨가 대신 택한 경구용 치료제 '에브리스디'. 다만 비급여여서 약값이 100만원에 이른다. [사진=본인제공]

척수강을 제대로 찌를 수 없어 '스핀라자'를 투입하기 어려웠다던 우씨가 대신 택한 경구용 치료제 '에브리스디'. 다만 비급여여서 약값이 100만원에 이른다. [사진=본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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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 치료제 급여화 문제, 사회적 합의 필요"

심평원은 초고가 치료제일수록 건보 적용 조건으로 위험분담·총액제한 등을 제약사 측에 제시한다. 치료제에 대해 건보 재정으로 비싼 값을 지불했는데 효과가 나타나지 않거나, 지나친 급여 청구에 따른 건보 재정 남용을 사전에 막겠다는 취지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건강보험은 국민 혈세라는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비싼 치료제일수록 효과성 검증에 까다롭다"며 "다른 질환에 적용할 경우 같은 돈으로 수많은 환자가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희귀질환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고통을 안고 산다는 점에서 마냥 경제성 원칙에 입각할 수만은 없는 점도 사실이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짚었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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