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메디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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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은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단어 중 하나다. ‘소진’을 뜻하는 영어 단어로 어떠한 일을 하던 중 극심한 육체·정신적 피로로 일에 대한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상황을 뜻한다. 즉, 더 이상 아무런 것도 할 수 없는, 동력 상실의 기관차가 돼버린 셈이다.


이에 대한 의료·학술적 논의도 계속 이뤄지고 있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번아웃을 ‘증후군’으로 분류했고, 스웨덴 등에서는 번아웃을 유급병가, 질병수당을 지급하는 질병으로 본다. 그럼에도 저자는 "번아웃 담론이 50년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며 대중의 이해는 크게 발전하지 않았고, 과학적 이해 또한 정체된 상태라고 짚는다.

저자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확한 단어를 써야 한다고 강조하며 번아웃을 "일에 대한 우리의 이상과 직업의 현실 사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분투하는 경험"이라고 정의한다. 직업의 현실이 쇠락해가는 반면 이상은 점점 커져만 가면서 이 간극은 점차 커져만 갔고, 이에 번아웃이 점점 더 확산됐다는 인식이다.


이 같은 인식의 배경에는 사회문화적으로 깊게 내재된, 업무가 존엄과 인격, 목적의 원천이라는 ‘고귀한 거짓말’도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저자가 최근의 번아웃 열풍에 대해 "이에 대한 글들이 대부분 무시무시할 정도로 익숙하다"며 "우리의 집단 사고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거짓말을 통해 사회가 인류를 번아웃으로 내몰고 있음에도 이를 사회적 문제로 보기보다는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함으로써 "번아웃의 애초 원인인 윤리·경제적으로 비인간적인 체계를 그대로 내버려둔다"는 것이다.


[이미지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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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자는 번아웃의 문제를 개인이 어찌 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물론 그렇다고 이를 수긍하고 당연시하지 않는다. 저자는 해결책으로 ‘연대’를 제시한다.


지금 우리가 묻는 것이 "내가 나의 번아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당신의 번아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연대라는 집단적 노력을 통해 "모두가 잠재적 희생자인 동시에 잠재적 매개체일 수 있는 공통된 입장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번아웃이라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끝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가 내리는 마지막 결론에 대해서는 이게 정말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다소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에게 다른 생활 양식을 가져다줬다고 본 저자는 다만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기계와 인공지능(AI) 등을 통한 ‘자동화’로 노동 혁명이 일어났을 것이라 본다. 이를 통해 "어쩌면 노동이란 근본적으로 그리 좋지 않은 것"이라며 "노동은 전부 로봇에게 맡겨버리고 노동의 달콤한 과실만을 맛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고 장밋빛 미래를 제시한다.


그렇지만 과연 이 같은 미래가 가능할까. ‘터미네이터’ ‘설국열차’ 등에서 다루는 것처럼 기계에 의해 지배당하거나 혹은 기계가 만들어낸 과실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번아웃을 당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한 채 나락으로 떨어져버리는 미래가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번아웃은 기계에 맡겨두자"며 "우리에게는 더 나은 할 일이 있으니까"라고 하지만 그런 미래가 찾아올까 되레 두렵다. 노동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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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의 종말 | 조나단 말레식 지음 | 송섬별 옮김 | 메디치미디어 | 352쪽 | 2만3000원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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