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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임순례 감독 "국가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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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교회 피랍사건 다룬 '교섭'
사건 판단은 영화 본 관객의 몫
동물보호·성평등 위한 노력 계속

1984년 치악산 한 민박집, 한양대학교 영어영문학과 4학년이던 한 젊은이는 고민에 빠졌다. 졸업을 앞두고 세 가지 갈림길 앞에 섰다. 다수가 그렇듯 기업에 입사하는 길이 유력했다. 교수는 똑똑하고 학점도 좋은 그에게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계속 공부하길 권했다. 그런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되는 길에 마음이 갔다. 쉬운 길을 놔두고 가시밭길에 끌렸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임순례(64) 감독은 "당시 한국 영화산업이 활성화되지 않아서 여성이 영화감독이 된 경우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당시 영화를 하는 건 우주비행사처럼 앞이 안 보이는 일이었다"며 웃었다.


선택은 영화였다. 임 감독은 10년을 투자해보고 감독이 되지 못하더라도 남에게 책임을 미루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는 "40년이 지났지만 단 한 번도 영화감독이 된 걸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4년간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해온 영문학 대신 연극영화학 석사과정을 수료했고, 파리 제8대학교 대학원에서 영화 석사과정을 밟았다. 엘리트 영화인에서 성공한 상업영화 감독이 된 것이다.

샘물교회 피랍사건 스크린에
임순례 감독[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임순례 감독[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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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감독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명승부를 펼친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실화를 다룬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었던 줄기세포 논문 조작사건을 진실을 향해 가는 언론인의 모습을 통해 정면 돌파한 '제보자'(2014), 자연에서 얻는 한 끼의 소중함과 힐링을 다룬 '리틀 포레스트'(2018)로 호평을 얻었다.


이번에는 2007년 샘물교회 한국인 납치사건을 다룬 '교섭'으로 돌아왔다. 최악의 피랍사건으로 탈레반의 인질이 된 한국인들을 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한 외교관과 현지 국정원 요원의 교섭 작전을 그린 영화다.


사건 당시 아프가니스탄 현지의 위험성을 인지한 정부가 엄중히 경고했으나 선교 목적으로 입국을 강행한 사실이 드러나며 갑론을박이 일었다. 실화 소재를 상업적으로 어떻게 다룰지 주목됐다. 우려도 나왔다. 감독은 "소재의 위험성은 있지만 신선하다고 봤다. 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가의 기능에 관해 묻고 싶었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란 무엇인가. 국가의 역할과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공무원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감독은 또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분명 있지만, 영화에서 잘잘못을 가리거나 주관을 밝히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연출자의 생각을 드러나게 하기보다 관객에게 양쪽 이야기를 들려주고 스스로 판단하게 하고 싶었다. 영화를 보고 관심 있는 분들은 실제 사건을 찾아보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 또한 영화의 기능"이라고 했다.


황정민·현빈 이끌고 요르단 로케이션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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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은 요르단 로케이션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을 구현했다. 임 감독은 "요르단 스태프들이 할리우드와 협업을 많이 해서 역량이 좋았다. 요르단 스태프 100명, 한국 스태프 100명, 반반으로 구성했다. 탈레반 집단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아랍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도 공부했다"고 말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이후 21년 만에 배우 황정민과 다시 호흡을 맞췄고, 현빈이 호흡을 맞췄다. 임 감독은 황정민에 대해 "20년 전 만난 먼 친척 조카 같다"고 했다. 그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촬영할 땐 마냥 신나고 재미있어했는데, 이제 주연배우로서 책임감, 집중력, 열정이 느껴졌다. 20년 동안 영화적 지능이 발달했달까. 능력이 긍정적으로 잘 발휘되고 있다고 느낀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현빈은 어느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모두 꼼꼼하게 확인하는 성격이더라. 배우로서 늘 평정심을 유지한다. 이 사람은 화고 안 내지? 싶을 만큼 자기를 드러내는 일이 없다. 언제 화를 내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늘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다더라. '뭔가 사정이 있겠지' 생각한다고. 어린 나이에 그걸 깨우치다니…(웃음)"


카라 그리고 든든, 임순례의 책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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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감독은 동물보호단체 카라 전신인 아름품 창립 멤버로,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카라의 상임이사를 역임했다. 끊임없이 동물 보호에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에는 KBS '태종 이방원' 촬영 현장에서 발생한 말 사고와 관련해 "한 생명의 희생을 담보로 제작할 장면은 없다"고 쓴소리했다. 재발 방지를 위해 출연 동물 보호를 위한 법제화와 제작진의 의식 제고도 강조했다.


"굳이 동물을 위험에 처하게 할 필요가 있는지 말하고자 했다. 특수효과(CG)나 앵글을 달리해서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 촬영장에서 동물은 생명이 아닌 언제든 대체 가능한 소품으로 취급하는 사람들도 많다. 촬영을 먼저 하고 CG 작업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 조금만 배려하면 할 수 있고 우리가 못하는 기술도 아니다. 생명을 경시하는 풍토가 문제다. '태종 이방원' 사건 이후 경각심이 생기지 않았나. 동물 장면에서는 아역배우나 노약자 특성에 맞는 배려와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임순례 감독은 성평등센터 든든(이하 든든) 센터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2018년 3월 1일, 사단법인 여성영화인모임이 운영하고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하는 든든이 개소한 뒤, 2016년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계기로 차분히 토대를 다졌다. 이제 운영 5년 차,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감독은 "성차별적인 일이 벌어졌을 때 이제 말할 곳이 생겼다는 점이 변화랄까. 예전에는 '내가 더러워서 그만둔다'면서 말을 못 한다든지 했는데, 이제 신고할 곳이 생긴 것이다. 이를 남녀 모두 인지하는 일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말을 이었다.


"꼭 성희롱, 성차별에 관한 부분을 말하는 게 아니다. 결국 평등한 영화 현장을 만들자는 취지다. 혹자는 여성감독 최초로 제작비 100억원대 넘는 영화를 연출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 글쎄…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연극영화과에 가보면 재능있는 여성 학생들이 많고 그들이 만드는 좋은 작품도 수두룩하다. 그렇게 길러지는 여성감독의 수가 많은데, 산업에 진입하는 여성 감독의 비율은 낮다. 중저예산 영화는 만들 수 있어도 블록버스터 연출은 안 맡긴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차별이고, 유리천장 같다는 말이다. 그 장벽을 깨는 게 든든의 역할이다."


임 감독은 동물보호와 든든 활동을 분명히 구별해 말했다. "여성과 동물보호, 두 활동은 다른 개념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동물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동물복지 증진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개인적인 차원의 일이다. 자연 앞에서 늘 겸손해진다. 자연이 제게 주는 위로와 힐링이 있다. 그 자연 안에 동물도 포함된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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