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수장·학자 6인의 경고 "현 위기는 합병증…방치하면 사망"
정부·정치권, 경쟁력 강화 방안 적극 모색해야
금리 인상 불가피…정책조합 중요
[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세종=권해영 기자] "대내외 균형이 서로 충돌하고 무너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동반 경기침체를 앓을 수 있기 때문에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전직 경제 수장들과 경제학자들이 진단한 현재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이다. 이들은 현 상황을 고물가ㆍ고환율ㆍ고금리로 인해 금융ㆍ실물이 동시에 어려움을 겪는 복합위기로 진단하고 윤석열 정부 경제팀이 어느 때보다 위기의식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의 경우 전 세계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공감대 아래 정책 공조를 했지만 지금은 지정학적 요인인 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19, 미ㆍ중 갈등 등 해외요인과 비경제적 요인까지 가세해 어려움이 가중된 시기인 만큼 정부와 정치권이 경제주체들의 경쟁력을 강화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법인세나 소득세 등의 감세는 물론 긴 호흡을 통한 구조조정을 동반해야 한다는 게 전직 경제 수장들과 경제학자들이 공통으로 내놓은 해법이다.
아시아경제신문은 한국 경제가 처한 현 상황과 재도약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윤증현ㆍ박재완ㆍ유일호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 황윤재 차기 한국경제학회장 등 6명의 전직 경제수장과 경제학자를 인터뷰했다.
◆환율·물가 안정 최우선 과제= 전 경제수장들은 물가·외환시장 안정이 현 정부의 최우선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은 "우리처럼 수출에 의존하고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소위 말해 대외균형 즉 무역수지, 경상수지, 환율, 수출과 대내 균형 즉 내수, 투자, 성장 등이 충돌할 때 대외균형을 우선해야 한다"며 "환율 관리를 위해서라도 금리를 올려야 할 불가피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급하게 기준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한미 간 금리차이로 인해 우리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면서 "환율, 투자에 문제가 되니 증시도 바로 직격탄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박재완 전 기재부 장관 역시 "물가, 환율, 경기침체 모두 시급하지만 우선적으로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물가, 환율을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과거 위기와 달리 딱 부러지는 해법을 찾기 힘든 지금, 정부의 정책 조합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윤 전 장관은 "물가, 경상수지·국제수지, 성장 세 축은 마의 삼각관계"라면서 "성장하면 물가가 올라가고, 국제수지도 나빠지기 마련인데 국제수지와 물가를 제대로 관리하면 성장이 저해돼 트레이드 오프"라고 말했다. 정부 입장에선 성장·고용을 위해 감세 등 경기 침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안 할 수 없고, 한국은행은 시장에 유동성이 너무 많이 풀려있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어 서로 상충할 수 있지만 부처 간, 기관 간 최대한 협조를 통해 물가 상승을 억제하면서 경기침체를 예방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승 전 총재도 "지금 한국경제가 구조적으로 저성장에 진입할 수밖에 없는 전환점에 놓여 있다"고 진단하며 적극적이고 과감한 중앙은행의 역할을 주문했다.
한편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는 부동산 시장의 붕괴를 뇌관으로 꼽았다. 과거 위기와 달리 가계·기업·정부의 부채가 폭증한 상황에서 잇단 금리인상으로 부동산이 붕괴하면 경제가 혼란과 불안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과거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위기가 사람의 병으로 치자면 뇌졸중이었다면 지금의 경제위기는 일종의 합병증"이라며 "외환위기처럼 당장 경제가 쓰러지지는 않겠지만 폭증한 부채를 제때 치료(대처) 하지 않으면 경제가 붕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법인세 인하 기업 숨통 틔울 것= 전직 경제수장과 학자들은 한국경제가 저성장 갈림길에 선 상황에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방안을 정부가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법인세 인하가 기업의 숨통을 틔울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윤증현 전 장관은 "법인세 인하를 부자감세라고 몰아세우면 안 된다"면서 "법인이 이익을 내면 그 이익이 법인에만 가는 게 아니라 법인을 구성하는 주주, 채권자, 종업원 모두에게 돌아간다"고 밝혔다. 유일호 전 부총리도 "경기둔화를 완화할 묘수가 뾰족이 없지만,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선 정부가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법인세를 인하하고,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 기업이 일하기 편해지고 그것 자체만으로도 투자를 진작하고, 경기 부양하는 대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기업을 지원하고 규제 완화, 법인세 인하 등을 총망라해서 (기업의) 어려운 점을 최대한 줄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황윤재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은 "법인세 인하가 한 방안"이라면서 "다만 법인세 감소를 너무 확대한다면 재정적자와 관계가 있고, 영국의 감세정책에서 봤듯 후폭풍이 거셀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스타트업 기업이 쉽게 생태계에 뛰어들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주고, 기업활동에서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박재완 전 장관은 "더 중요한 것은 위기가 끝난 후에 어떻게 할 것이냐"라면서 "긴 호흡으로 근본적인 구조개혁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노동, 교육, 연금, 정부를 포함한 공공기관의 군살빼기가 멀리 봤을 때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박 전 장관은 "기업가 정신을 진작해 해외로 공장이 안 나가고 국내에 일자리가 만들어지도록 해야 한다"면서 "근본적으로 국가 잠재 성장률을 끌어올릴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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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당연히 위기의식을 가져야 하지만 대중에게 지나친 위기감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도 나왔다. 황 차기 학회장은 "잇단 금리인상으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실제 소비와 수요가 줄면서 자기 충족적 예언이 실현될 수 있다"며 "심리 상태에 따라 경제가 더 나쁜 상황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정부를 믿고 신뢰할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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