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지방법원 청사./사진 출처=청주지방법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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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응급실에 실려온 산모가 질출혈이 있고 복통을 호소했음에도 태반조기박리 가능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만연히 대처해 출생한 아이가 뇌병변 등 장애를 입게 한 대학병원에 거액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5일 법원에 따르면 청주지방법법원 제11민사부(재판장 임병렬 부장판사)는 A군(5세)이 충남대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최근 7억5440여만원과 이에 대한 사건 발생일 다음날(2017년 9월 9일)부터의 이자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A군의 모인 B씨는 임신 중이었던 2017년 9월 8일 새벽 2시께 질출혈이 발생해 119 구급차로 이송돼 충남대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병원 의료진은 같은 날 새벽 2시55분부터 진료를 시작한 뒤 초음파 검사, 혈액 검사, 태아의 심박수를 체크하는 비수축 검사 등을 실시했다.

이후 경과를 지켜보던 의료진은 같은 날 새벽 4시17분께 B씨의 질출혈이 계속되고 지속적으로 복통을 호소하자 응급제왕절개수술을 실시, 2.83kg의 남아인 A군을 분만했다.


그런데 A군은 출생 직후 초기 심박수가 60bpm으로 매우 저하된 상태였고, 당시 입에 혈종을 많이 머금고 있어 울음소리가 없었고, 몸이 축 늘어져 있었으며 전신 청색증 증상을 보였다.


의료진이 A군의 기도를 확보했는데도 좀처럼 A군의 심박수가 회복되지 않자, 생후 약 4분 뒤부터 의료진은 A군에게 기도삽관(스스로 호흡하기 힘든 환자에게 수동식 기구로 산소를 공급하는 조치)을 시행했고, 심박수 100bpm, 산소 공급 100%를 확인한 후 원고를 신생아집중치료실로 이동시켰다.


이후 같은 날 새벽 5시40분께부터 의료진은 A군에게 수액 치료, 인공호흡기치료를 시행했고, A군에게 턱의 떨림 증상, 뇌파상 비정상증, 경련 증상이 관찰된 후 혈압 감시, 수액 및 포도당 주입, 인공호흡기 치료 등을 시행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결국 충남대병원은 A군에게 신생아의 저산소성 허혈 뇌병증, 중증 출산질식 등을 진단했다.


그리고 1년여 뒤인 2018년 12월 A군은 대전시 유성구청으로부터 뇌병변장애 1급, 청각장애 5급 등 장애등급결정을 받았고, 이 사건 소 제기 당시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인한 사지마비 및 뇌성마비가 있어 보행·인지·언어 장애가 있는 상태였다.


A군 측은 산모 B씨가 지속적으로 복통과 질출혈을 호소한 이상 태반조기박리를 의심하거나 진단해 즉시 응급분만조치를 취했어야 함에도, 의료진이 약 2시간 동안 태반조기박리 가능성을 배제한 채 상당시간을 지체한 뒤에야 응급제왕절개술을 하는 등 즉각적인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A군이 뇌병변 등의 장애를 입게 됐다며 11억8800여만원과 그에 대한 이자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또 A군을 분만한 이후에도 피해 확대를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응급조치나 설명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반면 병원 측은 당시 B씨에 대한 초음파 및 비수축 검사 등을 시행한 결과, 의학적으로 태반조기박리를 의심할 만한 동반요인이나 증상이 없었고, 산모나 태아에 대한 경과 관찰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또 이후 B씨에게 질출혈이 추가로 발생하는 것을 보고, 태반조기박리를 의심해 그 즉시 응급제왕절개술을 시행했으므로 병원 측에 어떠한 과실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태반조기박리(Placental abruption)는 임신 20주 이후 태아 분만 이전에 정상 위치의 태반이 착상 부위로부터 조기에 분리되는 것으로 형성된 탈락막 혈종이 주위 태반을 박리, 압박, 파괴함으로써 질출혈이나 은폐출혈을 일으켜 모체와 태아에 여러 가지 심각한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는 산과적 중요 질환이다.


산모에게는 자궁과 태반 사이의 출혈로 인해 범발성 혈액응고장애가 발생해 대량출혈, 산후출혈 등을 일으킬 수 있고, 태아에게는 산소공급이 원활히 되지 않아 태아곤란증 또는 태아절박가사(뱃속의 태아에게 충분한 산소가 공급되지 않을 경우, 태아의 폐호흡이 어려워져 가사 상태에 빠지게 되는 위험한 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


재판부는 먼저 의료사고에서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한 대법원 판결을 원용했다.


앞서 대법원은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피해자 측에서 일련의 의료행위 과정에 있어서 저질러진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상의 과실이 있는 행위를 증명하고 그 결과와 사이에 일련의 의료행위 외에 다른 원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 이를테면 환자에게 의료행위 이전에 그러한 결과의 원인이 될 만한 건강상의 결함이 없었다는 사정을 증명한 경우에 있어서는, 의료행위를 한 측이 그 결과가 의료상의 과실로 인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이라는 입증을 하지 아니하는 이상, 의료상과실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해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타당한 부담을 그 지도원리로 하는 손해배상제도의 이상에 맞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재판부는 ▲태반조기박리의 가장 빈번한 징후가 질출혈 및 복부통증인데 B씨는 질출혈과 복부통증으로 인해 피고 병원의 응급실에 내원했고, 내원 이후에도 의료진에게 지속적으로 질출혈과 복부통증을 호소한 점 ▲산모가 진통이 있는 경우 비수축 검사, 초음파 검사, 혈액 검사 외에도 나이트라진 검사, 골반 검사, 자궁개대도, 태아 하강도, 경부 손실도 등을 판단해 태반조기박리를 면밀히 진단해야 하는데, 당시 응급실 기록에 의하면 태반조기박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그 외 간호기록지, 산부인과 경과기록지에도 태반조기박리에 대한 진료내역은 찾아볼 수 없어 피고 병원 산부인과 의료진은 처음 진료시부터 응급제왕절개술을 시행할 때까지 단순 조기 진통으로만 판단해 태반조기박리의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진료 및 시술한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는 진료 초기에 의학적으로 태반조기박리를 의심할 만한 특별한 징후가 없었다고 하나, 소아청소년과 초진기록지에는 태반조기박리 소견이 보인다고 기재돼 있는 점 ▲이 사건 주치의 역시 스스로 '양수가 터져 진통이 생겼다고 오해를 해서, 오진을 내렸다'는 취지로 답변한 점 ▲의료진이 산모의 질출혈이 시작된 사실을 알았음에도 그로부터 약 2시간 45분이 지나서야 응급제왕절개술을 시행한 점 등을 근거로 제시하며 "피고 병원 의료진의 응급제왕절개술은 과실로 인해 지체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위와 같은 사정들에 비춰 보면, 피고 병원 의료진은 출산 시 지켜야 할 주의의무를 위반해 B씨의 태반조기박리를 진단하지 못함에 따라 처치를 지연함으로써 결국 원고(A군)를 저산소성 허혈 뇌병증에 이르게 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재판부는 당시 의료진이 분만 이후에도 적절한 응급조치를 제대로 못했다거나, 설명의무를 위반했다는 A군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의료행위는 본질적으로 신체침해를 수반하고, 특히 출산의 경우 모든 기술을 다해 진료를 한다고 하더라도 예상 외의 결과가 생기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고도의 위험한 행위인 점 ▲일반적으로 실시되는 측정만으로는 산전에 태반조기박리를 정확하게 진단하기는 어려운 점 ▲원고의 심박수나 초음파 검사 결과가 비교적 정상적인 양상을 보이기도 한 점 등을 고려해 병원 측 책임 비율을 70%로 제한했다.


재판부는 뇌손상으로 인한 사지마비 및 뇌성마비 등으로 인해 노동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A군이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장차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일실수입)을 5억3780만원으로 계산했다. 그리고 소 제기 당시까지 이미 들어간 치료비 5310여만원과 장차 들어갈 치료비 6180여만원, 보행이 불가능한 A군이 수동 휠체어와 욕창 방지를 위한 매트를 사는데 필요한 비용 1840여만원을 배상액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혼자 식사하거나 목욕하기, 화장실 가기 등이 불가능한 A군을 5세부터 10세까지 5년 동안 돌봐줄 사람을 고용하는데 필요한 개호비 3억여원을 포함 재산상 손해액을 9억7700여만원으로 산정한 뒤, 과실 비율에 따라 6억8400여만원(70%)에 대해 병원 측이 배상책임을 지도록 했다. 이밖에 정신적 고통에 따른 손해배상(위자료) 7000만원을 합산, 총 배상액을 7억5400여만원으로 정했다.


여기에 사건 발생 다음날인 2017년 9월 9일부터 1심 판결 선고일인 2022년 9월 23일까지 연 5%, 판결 선고 다음날부터 실제 변제일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상 이율인 연 12%로 계산한 지연이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A군 측을 대리한 신현호 법무법인 해울 대표변호사는 "최근 산부인과학회의 감정 때문에 병원 측의 분만사고 과실, 특히 태반조기박리 사고 책임을 인정한 사례가 많지 않은데 법원이 태반조기박리로 출산 중 뇌손상된 사건에 대해 의료진의 오진 책임과 아울러 응급제왕절개수술을 지연한 과실책임을 인정한 보기 드문 사례"라고 밝혔다.


이어 신 변호사는 "최근 의료사고 시 병원 측의 책임을 많이 제한해 4억원이 넘는 분만사고 판결이 거의 없었다"며 "이번 사건은 이자 포함 10억원가량의 거액 배상을 인정함으로써 태아의 생명배려의무 위반에 대해 엄격한 책임을 부과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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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신 변호사는 "민사소송법 개정에 따라 법원이 의사를 상임전문심리위원으로 고용해 의료소송 재판에 관여시키면서 의료과실책임 인정비율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경향을 보이는 가운데, 법원이 규범적인 판단을 통해 의료진의 과실책임을 인정했다는데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덧붙였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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