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격화되자 인터넷 차단한 이란 정부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7차 총회에 참석해 연설하는 모습. 사진=AP 연합뉴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7차 총회에 참석해 연설하는 모습. 사진=AP 연합뉴스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방제일 기자] 이란에서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간 뒤 의문사한 사건이 발생해 진상 조사와 히잡 반대에 대한 반정부 항의 시위가 전국을 뒤덮고 있다.


이 가운데 이란 대통령이 미국 방송 여기자와의 예정된 인터뷰에서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22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국제전문기자이자 자사 앵커인 크리스티안 아만푸어는 전날 유엔 총회 참석으로 뉴욕에 있는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과의 인터뷰가 예정돼 있었다. 아만푸어 기자는 이란에서 자란 이란계 미국인이다.


아만푸어가 인터뷰 진행을 준비하자 이란 측 인사는 그에게 머리 스카프 착용을 요구했다. 아만푸어는 이를 거절했고, 라이시 대통령은 인터뷰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만푸어는 이란에서 보도 활동을 하는 동안은 현지 법률과 관습이 있기에 스카프를 둘렀지만, 이슬람 율법이 적용되지 않는 이란 바깥 지역에서 이란 관료와 인터뷰할 때는 머리를 가릴 필요가 없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곳 뉴욕을 비롯해 이란 이외의 곳에서 어떤 이란 대통령으로부터도 그런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며, "나는 1995년 이후 그들 한 명 한 명을 모두 인터뷰했고, 이란 안이나 밖에서 머리 스카프를 쓰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것이 필요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나 자신, 그리고 CNN, 여성 언론인들을 대신해 매우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만푸어는 애초에 머리 스카프를 착용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면 아예 인터뷰 약속을 잡지 않았을 것이라는 대통령 측 인사의 말을 전했다.


이 인사는 마침 이날이 이슬람력으로 첫 달인 무하람 등 성월이라는 점을 고려해 히잡 착용을 '존중의 문제'라고 언급했다고 아만푸어는 덧붙였다.


이란 율법에 따르면 이란 내에서 모든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머리를 가리고 꽉 끼지 않는 헐렁한 옷을 입어야 한다.


이 법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시행됐고, 이란을 찾는 관광객이나 정치인, 언론인 등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중동 국가를 경유하는 여객기 안에서는 이란 영공에 진입하기 전 여자 승객들에게 반드시 머리를 스카프 등으로 가리라고 안내한다.


◆ 시위 격화되자 주요 도시 인터넷 차단한 이란 정부


BBC를 비롯한 외신들은 쿠르드족 인권단체 헹가우를 인용해 22일 기준 최소 15명이 숨지고 450명이 다쳤고, 체포된 사람은 1000명을 훌쩍 넘겼다고 보도했다.


실탄, 최루탄, 물대포, 곤봉 등을 동원한 당국의 진압으로 20일 북서부 피란샤르에서는 16세 자카리아 히알이 정부군의 총격에 머리를 맞아 즉사했다. 같은 날 서부 케르만샤에서도 시위에 나선 주부가 총격으로 숨졌다. 세 아이의 엄마인 그의 시신은 아직 유족에게 인계되지도 않았다고 헹가우는 전했다.


21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마흐사 아미니(22) 의문사 규탄 시위 도중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고 있다. 사진=EPA 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마흐사 아미니(22) 의문사 규탄 시위 도중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고 있다. 사진=EPA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현재 이란은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일주일째 시위 중이다. 이란 정부 대처에 히잡 강요에 분노한 이란 여성들이 히잡을 불태우는 등 시위는 격화하고 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까지 시위가 번지자 치안 당국은 주요 도시의 인터넷 접속을 차단했다. 인터넷 접속 차단 감시단체인 '넷블록스'는 이란에서 사용자가 몇백만에 이르는 인스타그램의 접속이 안 되고 있으며 휴대폰 통신망도 일부 접속이 제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의 시민단체는 당국의 인터넷 접속 제한이 무력 유혈진압의 전조일 수 있다고 우려도 있다. 지난 2019년 기름값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 때도 이란 정부가 유혈 진압 직전 약 일주일간 인터넷부터 차단했다. 당시 치안 당국의 발포 등으로 1500여 명이 숨졌다.


美-이란, ‘히잡 미착용 女 의문사’ 놓고 유엔서 충돌


이번 이란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미 백악관이'인권에 대한 끔찍한 모독'이라고 비난한 데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도 비판에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국은 기본적 인권을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선 이란의 용감한 여성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시 대통령도 이날 뉴욕 기자회견을 통해 "책임질 당사자가 있다면 반드시 조사해야 할 것"이라며, "유가족에게 이 사건을 확실하게 계속 조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아미니가 구타당하지 않았다는 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성급히 결론을 내리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미국 경찰관들의 민간인 살해 사례와 영국의 여성 피살 통계를 근거로 들며 서방 국가가 이란에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며, "미국의 아동 학대, 캐나다 원주민 착취 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며 인권에 대한 이중잣대라고 비난했다.

AD

한편, 시아파 국가인 이란은 수니파 국가에 비해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광범위하게 인정한다. 하지만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히잡 착용을 의무화해왔다.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 시절에는 느슨히 법을 집행했지만, 지난해 8월 라이시 대통령이 집권한 뒤 이 법을 강력하게 적용하고 있다.


방제일 기자 zeilis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