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은모의 酒저리]김희경 달빛술래 대표 "살아 숨 쉬는 정통주 만들 것"
누룩이 다양성을 잃어버리면서 우리 술도 대부분 비슷비슷하다는 비판과 마주하게 됐다.
격하된 평가를 뒤엎기 위해선 누룩의 다양성 회복이 필요했다.
김 대표는 "달빛술래의 모든 술은 우리 술의 잃어버린 다양성과 복합성을 복원하고, 차별화된 맛과 내용을 담기 위해 직접 만든 누룩을 사용해 빚고 있다"며 "저온에서 5~6개월가량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특허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2> 경기 양평 '달빛술래'①
토종 농산물로 현대인 입맛에 맞는 우리 술 만들기 위해 시작
누룩, 우리 술의 정체성… 당화와 알코올 발효 동시에 일어나
직접 발효시켜 만든 누룩으로 술 빚어 맛과 향에 복합성 더해
[아시아경제 구은모 기자] 중국 후한 시대의 사상가 왕충(王充)은 세상 만물이 모두 우발적으로 생겨났다고 보았다. 유학자들은 하늘이 뚜렷한 의지와 목적을 가지고 만물의 생성에 개입한다고 여겼지만, 왕충에게 세계는 단지 우발적인 마주침의 결과일 뿐이었다.
왕충에 따르면 빗방울의 운명도 미리 결정되지 않는다. 낙하하는 빗방울은 어느 강으로 흘러들고 어느 땅으로 스며들지 알지 못한다. 단지 우연히 마주친 바람이 이끄는 대로 조금씩 혹은 급격히 방향이 수정될 뿐이다. 낙하 이후에도 어느 곳으로 언제까지 흘러갈지 모르긴 마찬가지인데, 김희경 달빛술래 양조장 대표도 그렇게 우발적인 마주침의 결과로 북한강 기슭까지 흘러들어왔다.
김 대표는 애초에 우리 술과 연이 닿아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평소 술을 그리 즐기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다 ‘우리술문화원 향음’과 마주쳤다. 우연이었다. 그는 "2014년쯤이었는데, 집에 돌아가던 길에 동네서 우연히 발견했다"며 "친구들과 같이 술 빚어서 나눠 마시면 즐겁겠단 생각에 발을 들이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곳에서 처음 술을 배웠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술을 빚고 연구도 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 술에 대한 애정이 싹텄다. 술을 빚는 동안 그는 즐거웠다. 그가 빚은 술에 대한 주변의 호평도 힘이 됐다. 그러다 전통이란 미명 하에 박제되지 않고 살아 숨 쉬는, 제대로 된 우리 술을 빚고 싶어졌다. 그렇게 2019년 11월 경기도 양평군 문호리에 달빛술래 양조장의 문을 열었다.
누룩, 우리 술의 정체성… 누룩의 다양성 회복 꾀하다
우리 술에 대한 애정은 우리 술의 근간이 되는 우리 땅으로 번졌다. 그는 "땅이 땅으로 살아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그러려면 이 땅에서 나는 농작물에 대한 소비가 필요한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술을 빚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양조 일을 업으로 삼게 된 이상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토종 농산물로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정통 우리 술을 만들어 보기로 다짐했다.
그에게 우리 술의 정체성을 가장 뚜렷이 나타내주는 것은 누룩이다. 곡자(?子·曲子)라고도 불리는 누룩은 술을 빚는 데 쓰이는 발효제로, 효소를 가진 곰팡이를 밀이나 보리, 쌀 같은 곡류에 번식시킨 덩어리다. 한국의 전통 양조법은 이 누룩을 이용해 주재료인 쌀의 당화와 알코올 발효를 동시에 일으킨다는 점에서 당화와 알코올 발효를 분리해 양조하는 맥주 등의 외국 술들과 차이가 있다.
누룩은 품질을 균일하게 관리하는 것이 어렵지만 다양한 미생물을 함유하고 있어 복합적인 풍미를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 대표는 "누룩은 우리 술을 서양은 물론 일본 등 동양의 다른 나라 술과도 다르게 만드는 핵심 요소"라며 "우리 술의 복합성은 자연 발효한 누룩의 다양성에서 기원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누룩이지만 일제강점기와 양곡관리법, 경제난 등을 거치며 전통 누룩은 가양주 문화와 함께 대부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20년대만 해도 동네마다 누룩 공장이 있어 그 수가 전국에 수천 곳에 달했지만 지금은 모두 문을 닫고 진주곡자, 송학곡자, 금정산성누룩 등 세 곳만 남았다.
누룩이 다양성을 잃어버리면서 우리 술도 대부분 비슷비슷하다는 비판과 마주하게 됐다. 격하된 평가를 뒤엎기 위해선 누룩의 다양성 회복이 필요했다. 김 대표는 "달빛술래의 모든 술은 우리 술의 잃어버린 다양성과 복합성을 복원하고, 차별화된 맛과 내용을 담기 위해 직접 만든 누룩을 사용해 빚고 있다"며 "저온에서 5~6개월가량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특허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유기농 특구 양평서 치유의 술 꿈꾸다
전북 임실이 고향인 김 대표는 양평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 그저 우연히 들렀다 이곳 자연에 사로잡혀 눌러앉게 됐다. 우연히 터를 잡게 됐지만 그는 양평이 훌륭한 술을 빚기에 더없이 좋은 땅이라고 말한다. 친환경농업특구인 양평군은 지난해 토종자원 거점 단지를 조성해 10.9헥타르(ha) 규모로 약 250여 종의 토종벼를 심고 재배에 나섰는데, 이렇게 재배된 유기농 토종벼는 달빛술래가 다양한 우리 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 영감을 주고 토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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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달빛술래를 통해 치유하는 삶도 이어가게 됐다. 양조장을 차리기 전 그는 30년 가까이 근육이완요법 같은 대체 치료 일을 했다. 대가를 받고 하는 일이었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좋았다. 이제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양평으로 흘러와 술을 빚고 있지만 본질은 같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삶에 즐거움을 더해줄 수 있는 술을 만들고 싶다"며 말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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