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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칼럼]가까운 것들이 사라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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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 서울 폭우 현장에서 반지하에 있던 한 아이를 구출하는 이웃들의 영상을 보았다. 이웃들은 홀로 갇혀 있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신들이 곧 구해줄 테니 괜찮다고, 침착하게 있으라고 계속 소리쳤다. 결국 이웃 중 한 명이 소화기로 창문 유리창을 부수고 아이를 구조해냈다.


이웃들은 아이가 나오자 끌어안아주며 괜찮다고 한참을 토닥여 주었다. 지하철에서 영상을 보는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걸 참기 어려웠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눈물이 날 것 같았는지 이해해보려 애썼다. 아마도 이웃의 존재 때문인 것 같았다. 근처에 사는 아이의 이름을 아는 이웃 아저씨, 아이를 구해내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모습, 그렇게 아이를 구해내고 나서 꼭 끌어안아주는 마음, 그런 것들이 나를 흔들었다.

우리는 이웃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어릴 적에만 해도 길에서 만난 온 동네 사람들이 아는 사람이고, 이웃 어른이고, 반갑게 인사하는 지인들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동네 사람은커녕, 같은 아파트 사람, 옆집 사람과도 어색한 시대다.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삶을 형성하는 존재들은 급속도로 사라졌다. 대신 남은 건 그보다 ‘먼’ 관계들이다.


이를 테면 평생 직접 만난 적 없는 어느 사람의 피드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가득 채운다. 그들은 주로 어디 호텔이나 카페에 가 있거나, 명품이나 성공한 사업을 전시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부러움이나 질투심을 느끼면서 간접적인 관계만을 맺어나간다. 일상에서 직접적인 관계들은 점점 줄어들고, 그런 먼 관계와 간접적인 관계들이 삶을 가득 채운다. ‘곁’에 있는 사람이 아닌, 곁에 없는 사람, 멀리 있는 사람들이 예능에서 노는 모습, 유튜브에서 농담 나누는 모습, SNS에서 행복을 전시하는 모습들이 더 일상을 상시적으로 차지한다.


우리 삶을 단단하게 채워주는 이웃은 점점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내 마음의 고충을 진심으로 나누고,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며, 때로는 행복과 기쁨을 곁에서 함께해줄 사람들은 점점 더 만나기 어려워진다. 반대로, 멀리서 우리 삶을 뒤흔드는 것들은 더 늘어난다. 가령,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의 목소리들은 점점 커진다. 인터넷에서 본 뉴스나 글은 어느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하지 않은 나, 어떤 직업을 선택한 나, 결혼했거나 결혼하지 않은 나를 비난한다. 우리에게는 그것들을 막아낼 방패막이가 없다.

아마도 내가 그 영상을 보고 나왔던 눈물에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마음이 응축되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이웃의 아이가 어려움에 처한다면, 달려가서 구해주고 안아주고 싶다. 나의 아이가 위험에 빠져 있다면, 옆집의 누군가가 달려와서 이름을 부르며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웃의 누군가에게 내 삶을 나누어주고, 그 누군가 또한 내게 삶을 건네주면 좋겠다. 그런 마음들이 그 순간 뒤섞여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나아가 아직 우리 사회 구석에 이웃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 이웃,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아 있는 그 인간성의 존재가 고마웠다. 모두가 자기 이익만을 최우선시 생각하며, 서로를 비난하고 혐오하기 바쁘기만 한 사회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행동하는 사회의 한 측면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 느꼈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마음이 남아있기를 바랐다. 나도 여전히 그런 사회의 일원이었으면 했다.


정지우 문화평론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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