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상선언' 재혁役 이병헌
재난 공포 속 공황과 의무감 분출
"칸 영화제 상영, 신나고 뿌듯한 순간"

이병헌/사진=BH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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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이슬 기자] '비상선언'은 한재림 감독이 수년 동안 준비해온 항공재난 영화다. 코로나19가 없던 때 시나리오가 완성됐다. 프리 프러덕션을 거쳐 촬영을 앞둔 시점에 팬데믹이 닥쳤다. 절묘한 시기, 마치 운명처럼 영화는 촬영을 시작했다. 주연배우들의 감회도 남달랐다. 의문의 바이러스를 둘러싼 재난에 놓인 배우들은 상황에 더 이입했다고 했다.


배우 이병헌(52)은 28일 영화 '비상선언'(감독 한재림)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전세계가 지나온 팬데믹 상황과 영화가 묘하게 맞닿아있다"며 "모두에게 깊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실이 영화를 앞서가는 것 같다"며 "팬데믹을 지나온 우리가 인간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자문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여러 인간군상이 나오는데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했을지 대입시키게 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영화를 본 후 생각이 많아질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다음달 3일 개봉하는 '비상선언'은 사상 초유의 항공테러로 무조건적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와 재난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관상'(2013)·'더 킹'(2019)의 한재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는 지난해 7월 74회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돼 상영됐다. 당시를 떠올리며 이병헌은 "관객들이 신나서 손뼉을 치는 순간이 몇 차례 있었다. 진짜 비행기 안에 있는 승객처럼 푹 빠져서 영화를 보더라. 배우로서 뿌듯한 순간이었다"며 미소 지었다.


이병헌은 처음 '비상선언' 시나리오를 읽고 단숨에 빠졌다고 했다. 그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으로 단번에 읽었다"며 "쏜살같이 재난 상황에 휩쓸려가면서 영화가 끝나는데, 긴장감과 당혹감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사람들이 공항을 막으면서 시위하는 설정이 과장이라고 느꼈거든요. 영화적으로 넣은 일이구나 싶었죠. 그런데 비슷한 일들이 최근에 일어났잖아요. 인간에 대해, 또 저에 대해 돌아보게 되지 않나 싶죠."

이병헌/사진=BH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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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림 감독과 첫 호흡은 어땠을까. 이병헌은 "함께 일해온 감독 중 가장 집요하다고 생각하는 감독이 김지운 감독인데, 그 선을 뛰어넘은 감독"이라고 말했다. 이어 "집요하고 섬세하면서 디테일에 목을 멘다. 그래서 배우들도 좋은 연기가 나온다. 아주 집요하다"고 했다.


비행공포증이 있지만 함께 탑승한 어린 딸을 지켜야 하는 탑승객 재혁으로 분한 이병헌은 단순한 '영웅'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공포증 설정은 누구보다 기민하게 상황을 살피는 장치가 됐다.


"영웅처럼 '짠' 하고 나타나는 설정이 가장 안 좋다고 봤어요. 갑자기 영웅이 된다는 설정은 잘못된 방향이 아닐까 경계했죠.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트라우마를 지녔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상황을 헤쳐 나가는 모습. 떨리는 숨을 고르면서 어쩔 수 없이 나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지길 바랐죠. 거기서 영웅의 모습이 나온다고 봤어요."


딸을 둔 아빠로 분한 이병헌은 실제 아들을 둔 아빠다. 그는 "직접 경험이 아주 큰 확신과 자신감을 줬다"고 했다. 이어 "아들과 딸 아버지는 굉장히 다르다. 주변에 딸을 둔 아버지들을 계속 관찰했다. 노는 모습부터 다르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캐릭터, 스파이나 재벌 등 상상에 의존하는 캐릭터보다 주위에 있을 거 같은 사람을 연기할 때 더 큰 확신이 든다"고 했다.


'비상선언'은 할리우드에서 360도 짐벌 세트를 공수해 촬영했다. 실감나게 펼쳐지는 항공기 회전 장면은 영화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꼽힐 만큼 인상적이다. 이병헌은 "할리우드에서도 이렇게 큰 사이즈의 비행기를 돌린 적이 없다더라. 세트에 들어가서 촬영하는 게 겁도 났다. 수십번의 테스트를 거쳤지만 100여명이 탄 상태로 돌리면 또 다르지 않을까 무서웠다. 만일 벨트가 뚝 끊어지면 어떡하나 싶기도 했는데, 그 공포감이 연기에 도움 됐다"고 말했다.


"몇 번 짐볼에서 촬영하니 나중에는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여유롭게 탈 수 있었어요. 대단한 촬영이었죠. 그 커다란 비행기를 돌리는 짐벌을 만들고 잘 해내고. 영화에서 탑승객들의 머리카락이 하늘로 솟구치는 장면은 '비상선언'의 시그니처 장면이 됐죠."

[인터뷰] 이병헌 "팬데믹 맞닿은 '비상선언', 현실이 영화를 앞선다" 원본보기 아이콘

[인터뷰] 이병헌 "팬데믹 맞닿은 '비상선언', 현실이 영화를 앞선다" 원본보기 아이콘


이병헌은 25세에 비행기에서 끔찍한 공포를 느꼈다고 털어놨다. 재혁처럼 기내에서 극도의 긴장감을 느꼈다는 것. 당시를 떠올리며 그는 "이제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잊을 수 없을 만큼 힘든 기억"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아름다운 그녀'가 끝나고 미국에 가려고 비행기에 탔는데 처음으로 공황장애를 느꼈어요. '나는 여기서 죽는구나' 충격적이었죠. 여전히 기억이 뚜렷해요. 기내에 의사가 있는지 방송하고, 비행기를 좀 세워달라고 말할 정도였죠. 중간에 세울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숨이 안 쉬어지고 답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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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상황에 오롯이 놓인 이병헌에게 미덕을 물었다. "정답은 모르겠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온전히 상대의 입장이 돼보려는 습관을 지닌다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것들을 지키면서 살게 되지 않을까."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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