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이달 초 후배와의 점심 식사 자리. 후배는 취재원인 투자 전문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줬다. 요지는 10년 만에 가장 큰 폭락장이 올 것이며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 전문가가 말한 대비의 의미는 폭락장이라는 ‘위기’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크게 떨어진 자산을 매입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뜻이었다. 전문가는 자산 매수를 위한 실탄을 최대한 마련하라고 조언했다. 10년 전 1조달러 폭탄이 터졌다면 이번에는 9조달러짜리가 터질 것이라며 보기 드문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후배는 전했다.
10년 전 위기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폭탄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달러 유동성 확대로 부풀린 자산 거품을 의미할 것이다. 리먼 파산 직전 Fed의 대차대조표상 자산 규모는 1조달러를 약간 밑도는 수준이었으나 현재 9조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늘었다.
2008년 이후에도 경제위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뉴욕 증시 주가는 길게 보면 언제나 상승이었다. Fed를 비롯한 중앙은행이 위기 때마다 유동성 공급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위기가 닥치면 중앙은행이 개입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고 주식시장은 언제 위기였냐는 듯 반등했다. 그래서 수많은 주식 격언 중 가장 와 닿은 격언은 ‘주가는 불안의 벽을 타고 오른다(The stock market climbs a wall of worry)’였다.
지난 몇 달 새 뉴욕 증시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흉흉해진 것도 40년 만에 최고치로 오른 물가나 우크라이나 전쟁보다는 Fed가 보유 자산을 줄였다고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진짜 2008년과 같은 폭락이 재연될까라는 의문도 든다. 이미 ‘Fed가 푼 돈이 얼만데…’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뉴욕 증시는 이달 들어 스멀스멀 반등하고 있으며 향후 주가 방향성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물가 통제에 실패한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도 위협받고 있다. 영국 총리 후보인 리즈 트러스 외무장관은 지난 17일 ITV 토론에서 총리에 오르면 영국 중앙은행(BOE)의 물가 안정 권한을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짐 챌머스 호주 재무장관은 이미 호주 중앙은행(RBA)의 성과, 이사회 구성, 물가 목표 등에 대한 점검을 시작했다. 일본은행(BOJ)은 나쁜 엔저의 주범 논란으로 시끄럽다.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진다면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고 주장하다 전례없이 빠른 긴축 전환을 선택한 제롬 파월 Fed 의장도 침체를 야기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지난 21일자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자신의 물가 예측이 틀렸다고 고해성사를 했다.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는 Fed 의장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도 물가를 예측하기 힘들고 그런 예측 불가능한 경제 흐름을 반영하는 주가 방향성을 예단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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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주가 흐름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위기가 반복되면서 부의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서두에서 밝힌 전문가의 말처럼 누군가의 위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시 없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실탄이 많을수록 기회가 커진다는 점은 자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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