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잇수다]지휘자로 활약하는 천재 연주자들 ‘명불허전’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첼로 천재’로 기억되는 장한나는 최근 세계 무대에서 지휘자로 두드러진 활약상을 펼치고 있다. 11세 나이로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린 그는 2017년 노르웨이 트론헤임 심포니의 첫 여성 상임지휘자 취임에 이어 최근 독일 함부르크 심포니 수석 객원 지휘자로 발탁되며 마에스트라로서의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오스트리아 빈심포니 지휘자 필리프 조르당이 코로나19에 확진돼 내한공연을 사흘 앞두고 포디움에 대타로 투입됐음에도 감동적인 무대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피아니스트 김선욱도 지휘자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2006년 영국 리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과 아시아인 최초 우승 기록을 세운 그는 2021년 KBS교향악단과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선보이며 지휘자로 데뷔했다. 그는 “피아노 연주가 직관적이라면 지휘는 다양한 악기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며 기회가 닿는대로 지휘자로 활동하고 싶다는 포부도 함께 밝혔다.
음악 영재로 세계무대를 빛낸 국내 연주자들이 속속 지휘자로 도전장을 내고 있다. 클래식계에서 뛰어난 연주자가 지휘자로 활약하는 일은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요하네스 브람스 역시 지휘자로 활약했고, 강한 카리스마로 악단을 휘어잡은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첼리스트였다. 그의 친구이자 사려 깊은 지휘로 사랑받은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는 비올리스트 출신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명지휘자 정명훈은 1974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2위로 입상한 실력파 피아니스트였지만 이듬해 줄리어드 음악원 지휘과에 입학해 본격적인 지휘공부를 시작했다. 세계적인 거장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역시 유년시절 장래가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지만 하버드대학교에 진학하며 문학과 철학으로 전공을 선회했다 이내 다시 음악의 길로 돌아와 지휘봉을 잡았다. 게오르그 솔티, 브루노 발터 또한 모두 당대 음악계를 주름잡던 명 피아니스트였다.
연주자가 지휘자로 변모를 꾀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신체적 부상이 먼저 언급된다. 클래식 역사상 가장 유명한 지휘자로 꼽히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잘츠부르크에서 활동하던 피아니스트였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던 그는 피아노에 본격 매진하기 위해 하루 8시간 이상 피아노 연습에 매달리며 활동에 힘을 실었지만 이내 건초염에 걸려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후 관심사를 지휘로 돌려 당대 최고 지휘자들의 공연을 보며 독학에 나섰다. 뛰어난 테크닉으로 세계 최정상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던 막심 벤게로프 역시 목 디스크와 어깨 부상을 음악적 전환점으로 삼아 활을 내려놓고 지휘봉을 잡은 대표적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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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이유는 넓은 음역을 아우르는 오케스트라 지휘를 통해 한 악기에 국한된 활동을 넘어 보다 넓은 음악 세계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휘자 활동 선언 당시 장한나는 “첼로로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이 한정돼있어 교향악 지휘에 도전했다”고 밝힌 바 있다.
홀로 완전한 연주를 위해 연습과 연구에 매진했던 연주자들은 지휘를 결심한 순간부터 100여명의 노련한 단원과 수백명에 이르는 청중을 설득할 강한 능력을 요구받는다. 누군가에게는 카리스마였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따스한 눈빛이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믿음이었을 자신만의 ‘무엇’을 위해 한국의 명연주자들은 오늘도 자신만의 수련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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