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 아이를 때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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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 필자는 2000년대 초·중반 초등학교에 다녔다. 2학년 때 만난 담임선생님은 소위 ‘군대식’ 위계질서와 엄격한 학급 분위기를 강조하는 분이셨다. 문제는 폭력이었다. 지각하거나, 졸거나, 소란을 피우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책상 위에 올라가 실내화를 벗게 한 다음 발바닥을 때렸다.


만약 누군가가 큰 잘못을 저지르면 연대책임에 의해 모두가 다 같이 매를 맞아야 했다. 어렴풋이 억울했던 기억이 있다. 왜 사람을 때리는지 9살의 나이로 이해할 수 없었다.

폭력에 익숙해지기까진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잘못했으니 몇 대 맞게 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신체가 자라고 남중·남고를 진학하면서는 이러한 사고가 더욱 공고해졌다. 폭력의 강도는 더욱 세졌지만 때리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정도로 무뎌졌다. 성인이 되고 친구들끼리 모이면 크게 맞았던 사건을 추억거리쯤으로 생각하며 낄낄거리기도 했다.


책은 폭력에 무덤덤한 한국사회를 있는 그대로 고발한다. 당신은 한 성인이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해서 회초리를 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고 폭행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다르다. 같은 사람인데도 어리니까 매질이 괜찮을 거라 여긴다. 심지어는 좀 맞으면서 자라야 바르게 큰다고 믿는 성인도 있다.

한국은 엄연한 폭력을 훈육이라는 이름 아래에 감춰왔다. 작가는 폭력은 어디까지나 학대며 교육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지적한다. 훈육이 잘못된 행동에 초점을 두고 이뤄진다면 학대는 잘못한 아이에게 집중한다. 잘못된 행동을 이해시키는 게 훈육이고, 잘못했으니 대가를 치르라는 게 학대다. 책과 언론이 집중 조명하는 것처럼 아이를 굶겨 죽이고 내버려 두는 것만이 학대가 아니다. ‘사랑의 매’도 사랑이 아니라 학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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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는 대물림된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보건복지부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가해자 1만명 중 어린 시절 학대를 당한 이가 536명이었다고 한다. 아이는 학대당하면서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에 대한 반발작용으로 성인이 되면 동물이나 아이처럼 연약한 존재를 괴롭힌다. 가학적인 방법으로 무너진 자존감을 충족하려는 것이다.


저자도 아동학대 사고에 연루됐다. 자녀가 어린이집에서 교사로부터 학대당했다. 그래서 책을 썼다고 한다. 어떤 행동이 학대에 해당하는지부터 왜 우리는 아동을 향한 정신적·육체적 폭력을 조심해야 하는지, 어떻게 학대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지,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하는지 공부하고 적었다고 한다.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끔찍한 아동학대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그럼에도 당신이 아이를 때려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말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한 일기를 소개한다. 숱한 범죄를 저지르고 무기징역형을 사는 신창원씨의 기록이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 하고 머리 한 번 쓸어줬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 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 하고 소리쳤는데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


당신의 폭력이 아이의 마음과 우리 사회에 무시무시한 상처를 키운다. 말이든 손찌검이든 중요치 않다. 무슨 잘못을 했건 맞아도 되는 아이는 없다. 훈육이라는 탈을 쓴 학대로 사각지대에서 우는 아이가 없어야 한다. 제발 아이 좀 때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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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도 되는 아이는 없다 | 김지은 | 슬로디미디어 | 216쪽 | 1만6000원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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