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 맨부커상 제정 50주년 수상작 ‘밀크맨'
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 편집자주
2018년 세계 3대 문학상이자 영미권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상 제정 50주년 수상작이다. 북아일랜드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일약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오른 애나 번스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1970년대에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적과 극단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폐쇄적인 마을 공동체 내에서 유무형의 폭력에 노출된 열여덟 살 여성의 일상과 내면을 일인칭 시점의 입말로 들려준다.
그때, 열여덟살 때, 나는 일촉즉발인 사회에서 자랐고 이곳에서는 신체 폭력이 없는 한, 명백한 언어적 모욕이 가해지지 않는 한, 눈앞에서 조롱당하지 않는 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는 게 기본 원칙이었으니, 그러니 일어나지 않은 일에 피해를 당했다고 할 수도 없었다. 17면
“알았어요. 그러니까 내가 책 읽으면서 걷는 것을 관두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조그만 독서등을 달고 다니는 것도 관두고 위험하고 무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 오른쪽을 보고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다시 보면 행복해질 거라는 말이죠?” “행복하고는 상관없어.” 셋째 형부가 말했는데 그 말은 그때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도 내가 들어본 가운데 가장 슬픈 말이었다. 99면
만약 내가 “『아이반호』를 읽으면서 경계 도로를 따라 걷는데 그 사람이 차에 타라고 했어”라고 말한다면 “대체 왜 위험한 경계 도로를 따라 걸었고 왜 『아이반호』를 읽었는데?”라는 말이 돌아올 것이다. 만약 내가 “저수지 공원에서 러닝을 하는데 밀크맨이 나타나서 나하고 같이 달렸어”라고 한다면 “그렇게 위험하고 수상한 곳에 대체 왜 간 거고 러닝이라니 그런 걸 왜 했니?”라는 말이 돌아올 것이다. 257면
“만약에 단 한 사람만 정상이고 나머지 사람 전부가 정상이 아니라면, 집단의식에서는 그 한 사람이 미친 사람으로 취급되겠지. 그렇다고 그 사람이 미친 사람이니?” “응.” 친구가 말했다. 285면
둔감하게 있지 않고, 상황을 인식하고, 사실을 알고, 사실을 받아들이고, 현재에 존재하고, 어른이 되는 일이란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 418면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상장 첫날 70% 폭등 "엔비디아 독주 끝나나"…AI ...
밀크맨 | 애나 번스 지음 | 홍한별 옮김 | 창비 | 500쪽 | 1만6800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