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포럼] 백제로 거슬러간 시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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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익산, 전주, 군산을 다녀왔다. 코로나19로 꼼짝도 못하던 일상이 기지개를 켜듯 주말마다 행사가 이어져 오히려 피곤하다고 투덜대던 중이었다. 오전 7시50분,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서울을 떠나는 기분이 이번만은 그저 들뜨고 행복했다. 마치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는 날처럼. 마음 맞는 이들과의 동행이 주는 기쁨이 아닐까.


익산에 내리니 땡볕이다. 이곳은 평야 지역으로 그늘을 찾기 어려운 곳이라 한다, 장마철이라고 혹시나 하고 가져온 우산이 양산 노릇을 톡톡히 했다. 뜨거운 볕을 피하듯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국립익산박물관이다. 전북 공립박물관이었다가 2020년 1월10일 국립익산박물관으로 증축 개관했다고 한다. 미륵사지 석탑의 심주석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과 미륵사지 유물 전시로, 후기 백제 문화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었다. 21세기 현대에 고스란히 가져다 놓아도 품격이 느껴지는 유물들이었다.

버스의 시원한 에어컨에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나 싶었는데 어느새 전주에 도착했다. 전주 전동 성당은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아치와 돔이 잘 어우러지는 멋진 건물로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로 외벽을 마감했다. 1914년에 착공했다는데 나란히 있는 사제관 앞의 두 그루의 배롱나무(목백일홍)가 고운 분홍색 꽃을 가득 안고 있는 모습이 붉은 벽돌의 사제관과 어우러져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성당을 나와서 경기전 주변을 감싸는 경기전 돌담길을 걸어봤다. 1410년에 창건된 경기전은 조선 왕조를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봉안된 정전답게 품격 있고 단아한 담장너머로 위풍당당한 고목들이 주변의 소란함을 가라앉히며 고즈넉하고 서늘한 기운을 느끼게 했다.


다음 날 군산으로 향했다. 초·중·고교 시절 교과서에서 이름으로만 외웠던 군산이라는 도시를 마음 먹고 와보기는 처음이다. 째보 선창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과거 철길이었던 곳을 지금 지나고 있다고 동행하는 이가 알려준다. 곡창지대를 끼고 있는 군산항으로 쌀과 수탈한 물품을 선창가에 내리고, 배를 이용해 일본으로 실어 나르는 거점 역할을 하기 위해 익산과 군산 간 철도가 놓였단다. 째보 선창의 뜬 다리 부두로 향했다. 당시 부산항이나 목포항보다도 큰 항구였는데 그 이유가 수탈의 전진기지 기능 때문이라니,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군산근대미술관이란 명칭을 달고 있는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의 금고동의 반쯤 채워진 대형 금고 내벽에 쓰여 있는 문구가 일제 강점기 상황을 직설적으로 전한다. "이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만 했다".

초원 사진관에선 단체사진을 한 장 찍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인 초원사진관에는 한석규와 심은하의 풋풋한 모습이 담긴 사진들과 심은하가 타던 주차위반 단속차량이 놓여 있었다. 20세기 초반 일제 강점기에서 몇 걸음 이동하니 갑자기 1998년으로 시대가 바뀐 느낌이 묘했다.


주말 고속도로의 버스 전용차로를 달려 서울로 돌아와 이번 여행을 준비한 동료에게 감사 인사 겸 전화를 했다. ‘짧은 여정이지만 7세기 백제에서 조선 시대 초기와 20세기 초반 일제 강점기 시대를 거쳐 현대까지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다닌 것 같소. 그걸 염두에 두고 준비한 거요?’ 40분에 걸친 긴 통화 끝에 그와 나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시간 여행을 했다, 1400년을 1박 2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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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욱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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