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육필 원고 관통하는 키워드 '눈물',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
관용의 눈물 한 방울, "나와 다른 이도 함께 품고 살아가는 세상"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 있다면 자유와 평등을 하나 되게 했던 프랑스 혁명 때의 그 프라테르니테, 관용의 ‘눈물 한 방울’이 아닌가. 나와 다른 이도 함께 품고 살아가는 세상 말이다."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육필 원고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눈물’이다. 초대 문화부 장관이자 문학평론가. 한국의 대표 석학, 시대의 지성으로 불렸던 선생. 지난 2월26일 향년 89세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선생은 손글씨로 기록을 남겼다. 죽음을 앞둔 상황. 이 사회에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그 안에 녹아 있다.
눈물 한 방울. 묘한 여운이 있는 제목으로 ‘이어령의 마지막 노트’가 출간됐다. 관용의 눈물은 어떤 의미일까.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타인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 인간의 따스한 체온이 담긴 눈물."
선생이 마지막 노트 서문에 담은 정의다. 우리는 그런 눈물을 언제 흘렸던가. 누군가 그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시대의 지성이 남긴 유훈(遺訓). 어쩌면 그 안에 오늘의 난국을 헤쳐 나갈 가르침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삶의 질서가 바뀌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신냉전의 그늘을 현실화했다. 내 나라의 것, 내 집단의 것, 내 가족의 것 그리고 내 것. 자기 이익을 우선하는 욕망의 소용돌이는 공존의 메커니즘을 파괴하는 바이러스가 돼서 우리를 오염시켰다.
나라와 집단, 개인이 지닌 ‘근육’의 크기가 옳고 그름의 잣대가 돼 버린 세상. 약육강식 시대에 힘 없는 존재는 당하며 사는 게 순리일까. 타인의 억울한 눈물 앞에서 눈을 감아버린다고 절망의 칼날이 자기만 피해 갈까. 그런 비정한 세상이라면 타인을 찌른 칼날이 언젠가 자기를 향할 것이다.
선생이 나와 다른 이도 함께 품고 살아가는 세상을 역설한 것도 그 때문 아닐까.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선생의 메시지에 담긴 함의. 그 뜻을 헤아리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의 몫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눈물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우선 기쁨과 감격의 눈물. 오랫동안 준비했던 시험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때, 아이를 출산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또 하나는 회한의 눈물. 누군가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자신의 선택을 되돌리고 싶을 때 그런 눈물을 경험한다. 울분의 눈물도 있다. 몹시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가슴에 가득 찬 나머지 슬픔을 주체할 수 없을 때 나오는 눈물이다.
선생의 메시지는 결국 타인의 울분을 다독여줄 이해와 배려를 당부한 것은 아닐까. 거창하게 표현한다면 이 사회에 공정과 상식을 정착하는 과정. 공정과 상식이라는 가치를 사탕발림 공약의 정치 수사(修辭)에 머물게 하지 말고 우리 삶에 체화하려면 누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정치인과 관료 집단의 어깨가 무겁다. 권위의 타성을 내려놓고, 낮은 자세로 세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이 사회의 토양을 바꿔나갈 수 있다. 다만 위정자의 일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사회의 변화를 추동하는 힘은 결국 개인의 실천에서 나오는 법이다. 어렵게만 여길 필요는 없다.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자는 게 선생의 유훈이다. 바로 이런 내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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