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후폭풍]"소송도 불사" 勞 공세에 기업 '전전긍긍'…세대·勞勞갈등 우려도
삼성·SK 등 대기업 노조 임피제 폐지 요구
임단협 핵심 정점으로도 부상…노사갈등 불씨 우려
첨예한 대립에 경영자·근로자 모두 속앓이
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공공기관사업본부 소속 관계자들이 임금피크제 지침 폐기 및 노정교섭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만을 기준으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 시행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 이후 산업계가 거센 후폭풍에 휩싸이고 있다. 삼성, SK 등을 비롯해 노조 입김이 센 현대자동차그룹 등 주요 대기업 노조들이 잇따라 회사에 임피제 폐지를 요구하며 소송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임금단체협상(임단협)을 마무리하지 못한 기업들의 경우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노사 갈등의 불씨가 된 상황이다.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의 ‘가이드라인’ 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임피제 폐지 요구하는 勞…임단협 가시밭길= 10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노동조합 공동교섭단은 지난 3일 삼성전자 대표이사인 한종희 부회장과 경계현 사장에게 임피제에 대한 사측의 입장을 묻는 공문을 보냈다.
노조는 공문에서 최근 대법원 판결 내용을 지적한 뒤 ‘회사는 근무 형태와 업무의 변경 없이 단순히 나이를 기준으로 한 임피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차별이므로 폐지를 요구한다’고 명시했다. 불합리한 임피제 운영으로 인한 금전적인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소송’을 통해 책임을 묻겠다고 통보했다. 사측은 노조에 임피제는 정년연장형으로 합리적이고 정당한 방식으로 결정된 것인 만큼 제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삼성전자는 2014년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며 임피제를 도입했다. 초기에는 만 55세를 기준으로 전년 임금 대비 10%씩 줄여나가는 방식이었지만, 이후 적용 시기를 만 57세로 연장했고 임금 감소율도 5%로 낮췄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정년을 연장했고 삭감률도 낮춰주는 등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개선됐다"며 "특히 대법원이 지적한 임피제 사례는 정년유지형인 만큼 정년연장형인 삼성전자와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다른 대기업 노조들 역시 임피제 폐지를 주장하며 올해 단체협상 요구안에 포함시키거나 별도로 사측에 요구했다.
2015년부터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면서 58세부터 연봉피크제를 적용 중인 SK하이닉스 노조를 비롯해 현대차와 기아, 르노코리아 등 완성체 업계도 임피제 철폐를 내세웠다. 현대차·기아는 만 59세부터 대상에 포함된다. 첫 해에는 임금이 동결된다. 정년인 만 60세 때는 임금을 종전 대비 10% 감소한다. 현대차·기아 노조는 국민연금 수급 시기와 연계해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 54세부터 임피제에 포함되는 르노코리아 노조도 임단협 요구안에 임피제 폐지를 포함시켰다.
포스코 등 중화학 기업에선 관련 제도를 놓고 노사 간 갈등이 치열하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지회는 임피제 무효 소송을 위한 소송인단을 모집 중이다. 현대제철 노조는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등이 지급한 400만원의 특별 격려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하며 지난달 2일부터 당진제철소 사장실을 한 달 넘게 점거 중이다.
◆중견기업까지 줄 타격…또 다른 노사갈등의 축= 중견기업들도 임피제 후폭풍이 거세다. 당장 중견기업계는 임피제를 도입한 기업 현장의 혼란을 우려한다. 소송 제기가 이어지면서 노사 간 갈등이 격화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중견기업 단체인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의 박양균 정책본부장은 "산업 현장에서는 법원 판결로 임피제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받아들인다"며 "노조는 임금협상에서 이슈로 제기할 것이고 이는 노사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임금피크제의 많은 유형 중 ‘정년유지형’에 국한돼 있지만 향후 유형을 가리지 않고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고 본다. 박 본부장은 "기업들은 정부의 지침에 따라서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인데 그동안 적용했던 기업에서도 부당하다고 소송이 제기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소송 리스크와 부담이 커진다"고 했다.
주요 기업들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당장 삼성전자의 경우 최근 임금협상 과정에서 노조와 대립을 지속했던 만큼 임피제 이슈가 또 다른 노사갈등의 축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정년연장형 임피제는 대법원이 문제 삼은 연령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 만큼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 국내 대기업의 상당수가 ‘정년연장형 임피제’를 도입한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단체 등을 중심으로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판결과 관련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적법한 임피제마저 무력화하려는 노조 측의 요구가 거세 자칫 노사갈등이 불거질까 하는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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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뇌관 ‘세대·노노갈등’=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임피제 규칙을 바꾸려면 근로자 과반수 노동조합이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 개정 과정에서 구성원 간 세대·노노(勞勞)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고령 근로자들은 회사에 기여할 만큼 했는데 급여를 깎는 개정에 대해 다수의 젊은 근로자들이 동조하는 모습을 보게 될 수 있다. 임피제 대상도 아니고 회사가 ‘원칙대로’ 대상자들의 급여를 깎는 데 문제가 있냐는 다수 젊은 근로자들의 반론도 생기기 마련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로 큰 홍역을 앓았던 노노갈등 대표 사례인 ‘인천국제공항(인국공) 사태’ 같은 파장이 기업 곳곳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임금·단체 협약(임단협)이나 소송처럼 법리에 따라 재판장에서 결판을 내고, 그 과정이 언론에 공개돼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는 흐름이 아니라 조직 내부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자라나는 것이라 해법을 찾기 어렵다. 결국 경영자와 근로자 모두 속앓이를 할 공산이 크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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